일상의 손길 닿 듯

Posted by on 5월 23,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아프고 힘들다 보니 사방이 넓게 보인다. 사프란(saffraan) 차를 우렸다. 손길 닿는 곳에 두고도 잊고 살더니. 어느 여름철 옹골지게 마셨던 그 맛을 오늘 찾은 것이다. 관절염 초기라는데, 뭐 이리 심한 것이냐. 잠 청하느라 시작한 엊저녁의 주량이,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친구 놀이에 입안이 꺼칠하다. 사프란에 손이 간 이유가 분명해진다. 놓아두면 이처럼 두루 찾게 되는 것이 일상의 손길이다. 떠날 것들은 떠난다. 남을 것들은 남는다. 움켜쥔 것은 펼쳐질 때 딴 세상을 가진다. 떠나고 펼쳐지고 비우는 것들은 어김없이 아프다. 아프다 보면 하나, 둘, 숫자를 세지 않아도 떠난다.  구호처럼 주문처럼 뭔가를 되뇌는 음률은 망조이다. 가치는 삶 그 자체이다. 무엇과 뭔가를 비교하는 것은 삶에 대한 몰상식이다. 자로 잰 듯, 거리를 줄이려는 자의적 행위는 얽매임이다.  뭐든 얽매여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 저 자신의 숭고한 영혼의 울림 앞에 마주 서야 한다. 무릎 굽히고 겸허하게 한 마디 청한다. “여름입니다. 시원한 차로 음차, 흠향하소서.” 오늘 부모님께 올리는 차 공양도 초하의 사프란 차로 대신한다. 우쭐함이 거리낌 없이 밀려든다. 저 빛나듯 황금빛으로 우러나온 사프란 차로 오래도록 입가심을 한다. 아프고 험한 무릎 일으켜 세워 세상을 함께 건넨다. 천지신명에게 은근슬쩍 의탁한다. 빌려서 말하지만, 매일 차 공양으로 만나는 하루의 시작은 친근함과 알뜰함이다. 두 분 살아 계실 적 못다 한 정을 불러 세운다. 누군가를 앞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차근차근 아픈 일에 매캐하게 연기 쐬듯, 보슬비에 모시 적삼 적시듯 그저 내 육신으로 스미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이천십구년 오월 스무사흗날, 月白이 ‘달집’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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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음풍

Posted by on 5월 16,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내일이면,

다짐처럼 입술 깨물었으나

숨 고르며 다가오는 건

필압처럼 사각대는 긁힘의 곡절.

한달음에 다가설 수 있는

날개 달린 백마를 부려

꿈속으로 스미는 수밖에

‘어허’ 비슷한 발성 구조로 고삐 당기는데

 

또 헛헛한 깊고 그윽한 나그네를

두리번 찾는 동안

서산 해넘이에 잠시 

아차,

목말라 혀 뺀 채, 저 눈망울 촉촉한

길고 먼 여정.

날개 꺾인 백제의 슬픈 표정

내 친구 백마와 막걸리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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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즈음하여

Posted by on 5월 15,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화요일의 늦은 귀가에서 만난 내 친구 자작나무들이다.

풀깎기 이후 바닥 매끄럽게 흰줄기 돋보이는가 했더니,

한밤중에도 시원하다.

내일이면 분명 하루종일 세계의 문이 닫혀 있을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이 아무런 기척 없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1923년 2월 産, 양촌 양조장의 흔적을 살펴볼 일이다. 지금쯤 잘 익어 오늘 내내 훈훈한 하루를 이끄는 견인차가 될 것이 또렷하다.

매일매일 의미를 찾아 하루를 여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일상을 아무 의미 없이 넘기는 일은 또 다른 의미로 높은 경지일 것이다. 아무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경계일 것이다. 그래서 꽤나 차원 다른 세계일 것이다. 그 세계에 잠시 흔적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 한들, 무슨 말거리나 되겠냐마는, 그래도 오늘은  딸들이 아빠의 흔적을 더듬어 주어서, 오히려 고맙다.

아빠~~~^^스승의 날~~
우리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 큰 딸이 가족 단체방에 오전 6:59에 올린 인사말

寓居에서 지켜본 아이들이

나의 진정성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대단히 만족해야겠다.

내가 언제 지들을 애써서 가르쳤겠나만은,

그래도 안보는 척 하면서 본 것이 있나 보구나.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내 자신의 옥돌을 가는 데 쓸 수 있다는 타산지석으로 삼았나보구나. 집안에 소홀한 아빠를 교훈으로 삼았나보구나.

남의 자식 맡아 기르느라 내 자식 크는 것도  몰랐건만, 어느새 뭉클하게 기쁨이 닿는구나.

나도 어제 청주에 전화하여 옛 친구같은 선생님과 통화를 하였다.  만나서 사는 이야기 좀 나누자는 반가움과 근간의 소식을 나누었다. 조만간 뵙자는 말도 서슴치 않고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동방미인 한 통을 조만간 막걸리 동지로 지낼 확률이 높은, 존경하는 분께 전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깊어지는 것은 발효처럼 오래된 인간적 매력에서 비롯된다.

그것을 볼 줄 알고, 받을 줄 안다는 것은 洪福이리라.

-이천십구년 오월 보름날, 月白이 ‘달집’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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