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영접하느라

Posted by on 5월 27,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거기다가 답사날 관찰되어졌겠지만, 귀한 퇴관님이 찾아오셔서 요즘은 새로운 세상을 영접하느라 매 순간마다 비명의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그 소리는 그 때마다 달라져요. 한번도 똑같은 소리가 아니더라구요. 오늘은 튼튼마디한의원에 가려고 의관을 갖추고 있네요. 일찌감치 머금었던 한 선달에 대한 짝사랑은 이쯤에서 접으려고 해요. 귀한 손님으로 오신 퇴관님만으로도 벅차니까요. 두루 살피어 큰 손님 치르지들 않도록 적의한 생활 이루소서, 짝사랑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옵소서.
-이천십구년 오월 스무이렛날, 月白이 ‘달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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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손길 닿 듯

Posted by on 5월 23,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아프고 힘들다 보니 사방이 넓게 보인다. 사프란(saffraan) 차를 우렸다. 손길 닿는 곳에 두고도 잊고 살더니. 어느 여름철 옹골지게 마셨던 그 맛을 오늘 찾은 것이다. 관절염 초기라는데, 뭐 이리 심한 것이냐. 잠 청하느라 시작한 엊저녁의 주량이,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친구 놀이에 입안이 꺼칠하다. 사프란에 손이 간 이유가 분명해진다. 놓아두면 이처럼 두루 찾게 되는 것이 일상의 손길이다. 떠날 것들은 떠난다. 남을 것들은 남는다. 움켜쥔 것은 펼쳐질 때 딴 세상을 가진다. 떠나고 펼쳐지고 비우는 것들은 어김없이 아프다. 아프다 보면 하나, 둘, 숫자를 세지 않아도 떠난다.  구호처럼 주문처럼 뭔가를 되뇌는 음률은 망조이다. 가치는 삶 그 자체이다. 무엇과 뭔가를 비교하는 것은 삶에 대한 몰상식이다. 자로 잰 듯, 거리를 줄이려는 자의적 행위는 얽매임이다.  뭐든 얽매여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 저 자신의 숭고한 영혼의 울림 앞에 마주 서야 한다. 무릎 굽히고 겸허하게 한 마디 청한다. “여름입니다. 시원한 차로 음차, 흠향하소서.” 오늘 부모님께 올리는 차 공양도 초하의 사프란 차로 대신한다. 우쭐함이 거리낌 없이 밀려든다. 저 빛나듯 황금빛으로 우러나온 사프란 차로 오래도록 입가심을 한다. 아프고 험한 무릎 일으켜 세워 세상을 함께 건넨다. 천지신명에게 은근슬쩍 의탁한다. 빌려서 말하지만, 매일 차 공양으로 만나는 하루의 시작은 친근함과 알뜰함이다. 두 분 살아 계실 적 못다 한 정을 불러 세운다. 누군가를 앞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차근차근 아픈 일에 매캐하게 연기 쐬듯, 보슬비에 모시 적삼 적시듯 그저 내 육신으로 스미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이천십구년 오월 스무사흗날, 月白이 ‘달집’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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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음풍

Posted by on 5월 16,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내일이면,

다짐처럼 입술 깨물었으나

숨 고르며 다가오는 건

필압처럼 사각대는 긁힘의 곡절.

한달음에 다가설 수 있는

날개 달린 백마를 부려

꿈속으로 스미는 수밖에

‘어허’ 비슷한 발성 구조로 고삐 당기는데

 

또 헛헛한 깊고 그윽한 나그네를

두리번 찾는 동안

서산 해넘이에 잠시 

아차,

목말라 혀 뺀 채, 저 눈망울 촉촉한

길고 먼 여정.

날개 꺾인 백제의 슬픈 표정

내 친구 백마와 막걸리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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