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척점

Posted by on 11월 11,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참 많은 나열이라고 할까. 눈을 뜨고 나서부터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놀랍다. 생각은 순간순간 뒤바뀜과 아무 저항 없이 이미 진입되고 있는 나아감의 당위에 이끌린 채, 아직 한 번도 비판하지 않는 일상으로의 여정을 받는다. 거기에 차 올리고, 끼니 잇고, 씻고 닦고 치우고 정리하면 다시 차 우려 축이고 정좌하여 대면한다. 담담하지만 당당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천둥과 번개로 휘갈긴 지난밤이 환해졌다. 바람은 창문을 흔들고 조금씩 파열음을 낸다. 할 일의 목록은 자꾸 숨고 생각은 호숫가로 나선다. 몰입하고자 할 때 자잘한 살림살이가 더 눈에 띄고, 일상에 지쳤을 때, 한몫하고자는 대척점에서의 ‘오늘 할 일’과 ‘해야 할 일’이 고개를 든다. 이때쯤이면 벌써 눈 뜬지 한나절은 지나 기운이 한 풀 꺾인다. 긴장 하나가 하루를 구축하는 데, 해체되듯 나른해진다. 잠깐 누우면 참 많은 것이 다시 눕는다. 누웠다가 일어나는 일의 반복이다. 잘 눕고 잘 일어나는 일로 긴장과 해체를 조절하는 요즘의 생활이 볼만하다.

-이천십구년 십일월 열하룻날, ‘달집’에서 월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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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기

Posted by on 11월 11,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아직도 몸이 뜨거울까. 벽난로는

시간으로 식어 서늘해지는 온기를 뿜어내는 게

본디 맡은 바 절정이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은은한 노을빛으로 꿈을 그린다. 숨 막혀 잿빛이었다가 쌀쌀맞게 숯이 된다.

색을 칠하라, 굳기 전의 쓸쓸함에

수사자가 그늘에서 먼 시선으로 갈기를 좌고우면할 때, 쉼은

제대로 나설 감당 벅찬 거친 사냥을 예비하는 동안이다.

그늘에서의 갈기는 천변만화의 언어이다.

흔들리는 갈기가 바람 때문이 아니라는 기억이

그가 지닌 깊은 표정의 백치미 안쪽, 비애를 품은 외로움과 그리움

진화로 구축하여 온 견문의 호박 같은

절제의 견고함,

딱 한 번의 사냥으로 갈기의 위엄을 실재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루 동안의 고사은거도였던, 곡진한 세월

거듭 환영으로 관통하면서 곁에 와 있다.

숱한 언술을 만들어 내던, 수사자의

갈기는 바람에 빗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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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안개

Posted by on 11월 11,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가을 호숫가 밤새 부옇게 가린 채 수런댄다.

해가 뜨니 살아 있구나 싶은 아랫마을 부스스 기지개를

순식간에 스캔하곤 이야기 멈추고 훈기를 날린다.

앞길 구만리 들판 말달리던 왕궁터 뒤집어 씌우고

며칠째 부소산성과 낙화암, 고란사를 휩쓸고

규암 반산호로 이끌고 나온다.

서서히 SNS에서도 위리안치되어

안부라고는 가족 단톡이 전부라

아무 연결 없으면 궁금해하고 걱정하는데

내가 현미밥 짓는 것을 배우고

두부조림에 이르기까지 진보하고 있을 때

도처 살가웠던 이들의 행보를 맞닥뜨린다.

두 볼 가득 터져 나오는 말보를

두 손으로 머리 쥐어짜듯 터질 것 같은 지성을

글도 늦고 임장감 떨어져 영상으로 송출한다는데

사방에서 팍팍 튕겨 오르는 생각이나 표정이

산하를 굽이 돌아 저잣거리에 백화만방 피었구나

차고 넘치는 말의 잔해로 안개의 입자를 삼았으니

걷혀야 할 순간 무릎 꺾여 가라앉는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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