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황차를 마주한다

Posted by on 10월 8, 2018 in 선달차회 | 0 comments

몸 하나 간수하는 데 참 많은 공력이 든다

일찍 잠을 청하니 2시, 3시면 일어난다. 서재가 익숙하지 않고 하는 일상이 낯설어 순서 뒤죽박죽이지만 하나씩 정리될 것이다. 논문을 읽으려고 태블릿용으로 요가북을 구했다. 벌써 신형이 나온 물건인데 가격은 그대로다. 안드로이드용은 더더구나 없다. 이게 마지막 버전일 수도 있겠다. 사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그 사이 미끄러워 떨어뜨리기도 했고, 필름을 붙이려 반포 전문 업체에 전화하여 물건을 준비시키고 부착하기도 했다. 참으로 공력을 들여 붙이는 것을 보고는 과연 믿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그 사이 퀼트로 파우치가 만들어지고, 요가북 인조가죽 케이스까지 갖췄다. 약간의 오차가 있으나 두꺼워진 채 파우치에 어찌어찌 넣을 수 있으니, 사용하다 보면 저희들끼리 양보할 것이다. 산책 시간을 기다려 부지런히 부소산성을 향하고 운무에 싸인 성 풍경을 감상하고 산책을 시작하였으나, 으스스 추운 온몸으로 파고드는 한기에 기세가 수그러들고 만다. 되돌아왔다. ‘되돌아오기를 참 잘했다’를 연발했다.

운무 가득하여 먼곳의 안부가 마치 코앞의 안부처럼 선명해진다. (부소산성 운무)

일의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순환고리에 갇히더라

한결같이 그랬다. 일이 순서에 들지 않아 엉망이 된다. 마음의 향방이 중요하다. 마음이 정해졌다한들, 순서를 궁리하지 않으면 이 또한 제멋대로가 되고 만다. 애터미 간고등어를 굽는다고 시도하였지만 그 순간 동시에 다른 일이 착수되어 있어서 뛰다시피 동동댄다. 하나씩 차분하게 살림살이를 한다는 게, 내게는 쉽지 않다. 냉동실에서 간고등어를 꺼내 놓고는 산책을 다녀올 동안 냉동실 문을 열어 둔 일도 묵과할 수 없는 방심의 증좌이다. 이게 보통 궁리가 아니다. 그러니 이 일을 일상에서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는 저절로 되는 일이겠지만, 내게는 모든 게 진땀을 뺀다. 들쑥날쑥 일머리가 서질 않는다.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익숙해지고 하나씩 늘렸으면 좋으련만 공부할 일도 산더미처럼 널려 있으니, 먹고 입고 자는 일의 일과에서 하나라도 벗어나면 좋겠다. 일과에서 줄어든 만큼 분주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는 생길 것이다.

광교산 호수길에서 흰뺨검둥오리 3마리와 한참을 수근댔다.

세상에 쓸 궁리는 곳곳이며, 매 순간이더라

먹다 남는 것들은 모두 골치 아프다. 분리수거 조차도 힘겹다. 그러나 점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접근하며 다가서고 있다. 껍질 두꺼운 방울토마토를 버리려다 구웠다. 장아찌 몇 개 넣어 함께 구워 찬으로 치웠다. 이 생산적인 엄청난 일을 나는 자꾸 치운다고 한다. 치우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 그야말로 ‘살림’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인데 불구하고 자꾸 치운다고 한다. 짠 음식은 짜지 않게 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한 가지 음식에서 서로의 조화를 위하여 섞어서 산출하는 어떤 일이 요리 아닐까 싶다. 물론 내 요리라는 것은 집에서 가져온 밑받찬을 가지고 조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세탁기 소리가 비행기 소리처럼 커져 있다. 탈수에서 탱크 밀어붙이는 소리를 낸다. 세탁기 사용도 이제 겨우 몇 번 경험한 것이다. 왜 이리 할 게, 해 봐야 하는 일이 많을까. 세탁에 맡길 셔츠도 수거 요청한 상태이다.

‘부소산의 다람쥐도 배가 고프다’, 나도 때마다 걱정이다.

익숙한 게 차 우려 마시는 일이니, 이또한 처음에는 그러했으니라

어쨌거나 세팅하여 돌아가게끔 하는 오늘 아침은 벌써 공력을 거의 다 사용한 듯하다. 저절로 차를 마시려고 앉는다. 오랜만에 황차를 우린다. 익숙한 차 우리는 동안, 익숙한 일은 거들떠보지 않고 여기저기 다른 일 몇 개씩을 우린다. 그래서 전모가 밝혀지고 생각이 받쳐주는 일도 발견된다. 모든 게 내 안목과 생각의 목록에 거미줄을 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빠져나가는 것은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끄집어내서 다시 집어넣는 방식이다. 망이 끊어져서 머리 속에서 지워지면 다시 끄집어내서 챙기고 자리 잡는다. 원리는 간단하나 실행을 주저하는 게 일상이었나 보다. 갖춰 놓고 산다는 것은 물목의 현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여 예측하고 있다는 말을 대신하는 요건일 것이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찻물 끓는 소리를 구별하는 일은 익숙하여 별 일 아니다. 매사 ‘살림살이’가 이렇듯 찻물 우리는 일처럼 저절로 눈 감고도 자신 있게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쉬울까. 세월의 때가 곱게 들어야 될 일이다.

황차 우리는 일처럼 익숙해질 수 있는 ‘살림살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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