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의 반발

Posted by on 10월 9, 2018 in 與言齋::묵상, 선달차회 | 0 comments

가끔 새로운 놀이를 즐긴다.

즐거움은 여행의 속성을 닮아있다. 살면서 수시로 새로운 의지를 개괄하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여행이 시공간을 달리하면서 닿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의지로 만드는 새로움은 각성이다. 매일 먹는 끼니조차 똑같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완전한 주체는 아니지만 끼니의 전후를 스스로 결정한다. 차생활에서 받은 습속이기도 하다. 똑같은 차를 여러 날 줄기차게 연작하면 몸에서 차를 물로 여긴다. 차의 남다른 개성을 몸의 적응 기제가 가소롭게 만든다. 이뇨까지 돕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바꿔 준다. 적당히 그때그때 불규칙에 근거하여 순환시키면 미처 속성 파악이 더딘 몸이 속는다. 차의 온전한 기운은 사람의 선호도에서 저만치 멀리 벗어난 낯선 손님이다. 이 차, 저 차, 여차 저차 할 때, 그럴 때 차는 온전한 기운을 낸다.

새롭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때 고양된다

내가 주인인 생활을 열었다. 사진 정리를 하다 보니 작년 12월, 올해 1월의 모습은 설레는 신입생처럼 청명하고 명징한 기세를 지녔더라. 오호라, 무려 5개월 후의 몸가짐과 자유 정년 실천의 생각이 예비되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되었다. 그 선한 인상이 지구를 수놓고 있었더란 놀라움에 전율한다. 그러니 33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무수한 것들이 한꺼번에 꽈리 튼 채 호시탐탐, 시험에 들게 하는 건 대적할 수 없다. 일상에서 직장 생활과 가정이 분화되어 나누어 살았으니 일의 성격에 네 일이 있고, 남의 일이 있었다는 실화이다. 분화에서 통합되어 가고 있는 일상의 생활 속성들이 모두 새롭다. 새로워서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 각성 수준 또한 높다.

피하거나 멀리 두지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마주하여 근성을 뽑는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 때, 받아들인다. 매어 있듯이 그 일에 머문다. 생각도 실천도 함께 운행된다. 안개처럼 뜬구름처럼 일고 지는 마음까지 오래 호응한다. 그리하여 억지로 끼니에 매이지 않는다.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호들갑도 재운다. 한껏 게으른 어떤 날은 마음이 육신의 허접함을 재울 것이다. 그러면 받아들이면 될 일, 현토를 달지 않으면 그만이다. 여기까지 오니 得道한 듯 의젓해 보인다. 어쩌라, 반대의 경우가 더 많으니 헛 것이다.  육신이 마음의 허전함을 이끌고 시녁을 고단하게 하는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을 알기나 할지. 根性은 몰입이고 오래 물고 늘어지며 끌고 가는 세력이다. 그러니 어색하고 남다른 신경 쓰임과 경험 못한 서툼 따위는 당연하다고 위무한다. 살아온 방식이 처음부터 정해지지 않았듯이, 경험이란 고르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지 편파적 또는 유목과 가닥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1차적 생산물을 가공하여 곤궁함을 달래는 정도이나, 이 또한 처음부터 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올 것은 어느새 다가와 있고, 떠날 것은 채비 하느라 덜컹댄다

뜨거운 여름 슬쩍 소식 끊고, 선선한 바람으로 옷깃을 여밀 때, 잊힌 외투 뇌새김 하듯 쏟아지는, 올 것은 어느새 다가와 있다. 부소산성 산책 나갔다가 되돌아온 것이 그랬다. 떠난 것을 못내 아쉬워하거나, 아직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채비도 없이 소리도 없이 떠났기에 나 혼자 분주했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건드려 찬기운으로 파고드는 그날 아침, 기어코 산행을 했다면 으스스한 가을 문턱에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었겠다. 방바닥을 덥히고 창문을 점고하면서 뜨겁게 차를 우려 몸을 다스리는 사이, 기어코 떠나야 할 여름임을 정확하게 인지했다. 세탁을 맡길 간절기 의복을 끄집어내 살펴 맡길 것인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몫까지 사용되지 않아 물컹한 궁리로 다시 분주하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그랬다. 매일 습관처럼 반복되며 쉽게 진행하던 일상은 차 마시듯 술술 넘어갔다. 거리낌 없이 시간대별로 비롯되듯 나를 만들었고 외형을 형성하였다. 그런 일과를 유지하는 게 자연스러운 생활 태도였다. 지금은 다르다. 익숙한 것들은 그대로 남고, 새로운 일상을 맞이한다. 누구나 하고 있고, 별로 세울 명분도 없는 일상의 소소함이 무게로 다가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무책임한 말을 한 수레 실어, 소중한 익숙함이 손님처럼 다가온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으로 치환한다. 피하지 않는다. 네 일이었고, 내 일이었던 분별의 세월에서 걸어 나왔다. 전부 다 내 일인 일상을 만나느라 자유 정년을 선물로 사용했나 보다. 내일 아침과 만나기 위해 냉동고에서 꺼낸 한 끼니의 간고등어와 연잎밥이 창가의 실온에서 별빛을 쏘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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