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都 담장 답사

Posted by on 12월 3,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古都 담장 답사 / 온형근

 

 

고도에서 햇살이나 주우면서 어느 왕조를 떠올리나 

한성에서 부여와 공주,

부여와 익산, 전주 엔간한데 어느 왕조를 알현하나

그대를 생각하며 어서 가보자 재촉하나

아직 충분하지 않은 인연과 여린 결심

손 뻗어 닿을 수 없는 먼 항구처럼 묵힌다.

 

그대와의 담장 하나쯤은 기억하오.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고 현상하여

마운트 입히던 시절의 순결함을

당신의 말소리 취입하지 않아 없지만

슬라이드 필름은 남아 있어 

살리고 싶은 왕조의 빈터만 긁어내고 있오.

텅 빈 민가는 주초도 없이 흔적도 없어

아무거라도 있었으면 했다오.

 

그대가 왕조의 끝자락에서 서성대며 머금었을 생각 

섬록암처럼 뚜렷한 사진으로 골자를 갈망하였건만

기골이 장대한 그대의 궁리를 보자기에 싸 둔 채

임류각이었을까 궁남지였을까, 폐사지의 담장은 또

만만하여 발돋움하면 나타나는 당신의 담장까지

발끝으로 차며 선반에 봉양한 애물단지

 

꽤 일찍 다가왔다가 여태까지 골바람 맴도는

오래도록 맵시로 치장한 허공에서 머무는 앵글

담장에 쏟아지는 낮 볕으로 온전하게 가둔다오.

그대를 건드려 터뜨린다는 건 시간의 유희

그대가 동참할 것임을 기어코 외면할 수 없어

아직은 이르다고 더디게 때를 벌고 있오.

서서히 게으름을 즐기는 사태에 와 있오.

 

 

-온형근, ‘고도 담장 답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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