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그늘에 기대다

Posted by on 1월 13, 2019 in 시인의 숨결 | 0 comments

그늘에 기대다 / 천양희

나무에 기대어 쉴 때 나를 굽어보며

나무는 한 뼘의 그늘을 주었다

그늘에다 나무처럼

곧은 맹세를 적은 적 있다

누구나 헛되이 보낸 오늘이 없지 않겠으나

돌아보면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것

작은 것이 아름답다던 슈마허도

세계를 흐느끼다 갔을 것이다

오늘의 내 궁리는

나무를 통해 어떻게 산을 이해할까, 이다

나에게는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어

흐리면 속썩은풀을 씹고

골짜기마다 메아리를 옮긴다

내 마음은 벼랑인데

푸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나무뿐

서로 겹쳐 있고 서로 스며 있구나

아무래도 나는

산길을 통해 그늘을 써야겠다

수풀떠들썩팔랑나비들이 떠들썩하기 전에

나무들 속이 어두워지기 전에

 

[출처] [이달의 시인] 천양희 – 그늘에 기대다 외 / 시인론 이숭원[201901vol.40]|작성자 공시사

 

[온형근의 詩視時]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마냥 허투루 떠들썩하면서 놀고 싶다. 하루에도 초 단위로 들락대는 생각의 조각을 주워 손바닥에 펼쳐 놓고, 이게 네 것이냐, 아니면 내 것이냐. 갸우뚱대며 들었다 놓았다 가늠할 때가 있다. 나무가 만드는 그늘이야 때가 있어 원을 그리지만, 숲길의 그늘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지는지조차 숲속에 묻히고 마는 법. 찬란한 아침이었다가 지는 해,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내일을 기다리는 잠자리에 눕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다. 겹쳐 있고 스며 있는 서로의 생각들이 저들끼리 만나 웅성대는 사이에도 그늘은 생겨나서 자라고 없어지곤 한다. 어느 한순간 정적만이 남아 올곧게 곧은 나무만 하늘을 향해 있어 기댈 것이 없어질 때가 호시탐탐 곁을 두고 있다.

(2019. 1. 13.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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