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숙정개酒熟正開, 익선달에게

Posted by on 4월 18,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익선달, 

어느새 사월이 한참일세.

그대와의 기약 또한 아득하여 가늠하기 어렵고 집안에 거미줄 투성이네.

내가 말했네, ‘거미야 걱정마라, 나는 게을러서 청소는 하지 않는다’고.

익선달을 생각하니 공연히 꿈마저 설레고 두근대더니,

아직은 꽃이 피지 않았으니 너무 이르다고 여겼다가 아, 이게 웬 변고인고. 

사방 팔방 꽃이 피어 생숭생숭 빛나는 계절에 봉착하고 말았네 그려.

‘千金尙未買佳節’ 돈이 필요 없어졌네. 이 좋은 계절을 살 수 없으니 말일세. 천금으로도 살 수 없네. 못 사네. 아름다운 계절을.

그러니 천금보다 비싼 이 귀한 시절을 익선달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일세.

항아리에 술은 뻐글뻐글 올라오고 마당에는 꽃이 활짝 피었으니,

지금이라도 유럽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부여로 한달음에 달려온다면,

나야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품을 수 있어서 좋고,

익선달은 유럽에 불법체류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은 게 아닌가 말일세.

‘酒熟正開’ 술 익고 제대로 피었네. 익선달만 합류하면 여기가 무릉도원일세.

오늘은 익선달 없는 제천이나 다녀올까 하네.

-이천십구년 사월 열여드렛날, 月白이 ‘달집’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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