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를 물린다.

Posted by on 5월 29,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엊그제 정말 오랜만에 필영형이 전화하였다.
바로 받지 못하여 확인하는 순간 전화를 넣었더니, 받지 않는다.
술 한 잔 하시고 예전 습관대로 전화하였다가,
괜히 했네..,
하시면서 하루를 접으셨나보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경우가 있으니까 이심전심 뭔지를 알겠다는 생각에,
죽니, 사니 좋아하던 사람도 이렇게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종대형은 또 얼마나 좋아했던가.
1년에 몇 번 만나고 있나?
종대형에게 말할게 있다.
“형 이제 나 만나도 담배는 없어.”
군산에서 농사 짓던 날 밤에 달려온 항섭형에게 인사한다.
“그 귀한 푸성귀를 집에 전달하였더니 온 식구가 좋아하면서
즐겼어요.”
그런데 새벽 5시에 나가면서 책은 왜 두고 갔어요?
수원 집에 임무를 부여하였으니, 거기서 찾으셔야 할 듯 해요.
금요 포럼이 사실상 와해되었다.
그래서 ‘낭만 포차’라고 하였더니, 집 딸들이
“에이, 아빠.
금요 포럼이 훨씬 멋있어요.”라고 한다.
그러면 다시 ‘금요 포럼’이다.
정진수 형은 요즘 바쁘신가 보다.
아니면 새로운 삶의 묘미를 체득하신거다.
다들 그립다.
나는 당분간 아호를 바꾸기로 했다.
퇴관이 그것이다.
‘모든 관계를 물린다.’는 뜻이다.
退關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깊은 뜻을 이렇게 슬쩍 올리는 이유는,
진정한 퇴관이 어렵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이 육이오 사변 같은 세상을 영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천십구년 오월 스무아흐렛날, 退關이 ‘달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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