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조경인가, 전통 정원인가

Posted by on 6월 26, 2019 in 조경문화콘텐츠::나무와함께:: | 0 comments

자연이란 숲이다. 숲에서는 모든 게 제 몫만큼 영역을 확보하여 아주 효율적인 생을 도모한다. 숲의 질서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과 다르다. 숲을 베어내고 사람이 자본의 논리에 경제적으로 모여 살며 도시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도시 근교나 산악을 포함한 자연은 변함없이 옛 그대로의 생명의 순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만 편리함을 추구하는 잇속에 따라 도시의 편익시설과 이로움을 만끽할 뿐이다. 그래도 또 주말이면 자연으로, 숲으로 떠나지 않는가. 산과 계곡이 있는 생명의 원천에 잠깐 머물며 긴 사유를 할 수 있는 명상의 순간이 원림에 있다. 원림이라고 말하면 동아시아 삼국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개념이 내재되어 소통이 가능한 용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조경, 조원, 원림이라는 삼국의 전문 산업 영역으로 개념을 이어가면 느낌이 또 다르다. 전통 공간에서의 정원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가. 이러한 산업 영역으로서 지칭되는 용어가 아니라, 숲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이 경영하는 정원이라면 원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전통 공간에 대한 개념어로서 마땅히 쓸만한 용어가 빈곤하다. 한국은 그냥 원림이라고 쓰면 숲을 배경으로 한 자연 영역에 사람의 흔적을 최소한으로 이용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지만, 정작 중국은 원림 앞에 전통 또는 고전이라는 말을 넣어야 한다. 고전 원림, 전통 공간의 원림이라고 말이다. 한국도 원림이라고 그냥쓰지 못하고 있다. 윤국병 등 몇이 한국정원학회를 만들어, 조경과 달리 전통공간의 정원을 표현한 최초의 개념에는 뜰 庭에 나라동산 苑을 사용하여 정원이었다. 우리의 소쇄원이나 보길도 원림 등이 울타리 개념을 넘어선 의미로 여겨졌기에 이를 포함하기 위함이다. 정원 유구 또는 유적으로 존치하는 곳의 자연 환경을 포함시키기 위한 고민이 드러난다.  윤국병, 민경현 등이 작고한 지금은 자연스럽게 한국전통조경이라고 명칭을 쓰고 있다. 물론 학회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한국전통조경학과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학회 논문에는 여전히 원림이니, 정원이니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하게 사용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분이 한국의 ‘조경’이라는 용어는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다. 까짓거 조경이란 용어는 그렇다치고, 전통 공간의 정원,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 사대부가 조영하고 경영한 정원에 대한 명칭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전통이라는 말을 꼭 넣어서 나머지 말을 사용한다. 전통 정원, 전통 조경, 전통 원림, 그냥 원림 뭐 이런 식이다. 중국은 고전 원림이라는 말을 쓰는데, 한국은 궁색하게 전통이라는 말로 일률적으로 뒤집어 씌워 사용한다. 전통에 대한 원형도 뚜렷하지 않고, 오히려 전통 정원에 대한 원형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이 전통이고 정원일까. 전통에 대한 탐구도 많고, 정원에 대한 탐구도 많으나, 전통 정원에 대한 탐구는 막연히 산발적이다. 이참에 기존에 만들어 궁여지책처럼, 그러나 자리잡아 확고해져가는 전통조경이라는 말로 의견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이 얼마나 기막힌 용어인가. 조경이라는 말을 살리고, 앞에 전통이라는 말만 붙인 건데, 그럴싸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고전조경이라고 하면 더 의미가 볼상사나워진다. 중국은 고전원림이라고 하니 그럴싸하게 여겨지는데 말이다. 일본은 그냥 모든 것을 조원이라는 말 하나도 통용하고 있다. 문화적 수용력과 저변 확대력이 매우 정교하고 인내심이 세심한 국가이다. 일본과 중국은 그러한데, 한국만은 여전히 용어만 가지고도 한 논문 쓸 수 있는 2019년의 현실이다. 내년에도 가능할 것이다. 여전히 용어 지칭만으로 논문이 가능한 국가이니, 이 얼마나 소모적이면서 당면한 사실인가. 누군가 용어를 만들 수는 있으나 누구나 그 용어를 따라가지는 않는다. 이미 기정사실화된 용어도 다시 끄집어 내 논란에 불을 붙인다. 가장 전통조경에 근접한 공간이 조선의 15세기 말 성종대에서 부터 불거진 사림의  등장과 훈구와 갈등에서 시작한 정치적 성패로 갈라지는 흥망성쇠에 따라 소외와 은일의 사대부 발생에서 누정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사화, 붕당/환국/탕평/세도 정치로 이어지는 사이에 임진/정묘/병자의 전쟁, 근대에 들어와 양요와 군란과 정변, 동학혁명, 을미와 을사의 의병까지 드라마틱한 시절에 누정 문화가 꽃피었다는 것이 한국 전통 조경의 가장 큰 특징이다. 동인이 이러한 정치적 흐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외와 은일의 사대부의 발생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당시의 조선 사대부의 유전자에 각인된 문화적 지식적 사상과 철학적 바탕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출처관이 또한 유교에서 비롯된 고집 센, 완고하여 비길 바가 없는 그야말로 유교 경전의 출처가 확실한 근거로 되어 있는, 출처관이라는 것이다. 진퇴양난이 아니라, 진퇴명료라는 것이다. 진퇴가 명료한 조선의 사대부는 벼슬에 나아가서 경화세족으로 지낼 때에도 집 주변 후원 등을 가꾸면서 자연을 끌어들여 거기서 사유의 전유를 누렸으며, 더 나아가 경도 주변 산과 계곡에서 시사를 운영하고 원림을 조성하여 경영하였다. 처음부터 나아가지 않은 사대부는 아예 지방 토호로서 원림을 경영하는 것은 기본 갖춤이었다. 나아갔다 물러나는 사대부는 아예 서서히 혹은 본가가 있는 세력과 경제력으로 원림을 조성하고 경영하였다. 욕심이 지나쳐서 조선왕조실록에까지 원림 경영의 화려함을 경계하라는 상소문이 올라간다. 숙종 때 윤취상의 원림, 경종 때 목호룡의 원림, 경종 때 김창업의 원림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대표적인 상소의 대상이 되는 욕심의 원림이라고 하겠다. 이밖에도 세종 때 조대림의 집 원림에 표범이 출범한 것과 성종 때 왕자의 원림을 위하여 공부하는 곳인 학궁의 땅을 빼앗으려 한 일, 철종 때 맑고 청빈한 원림을 경영하여 칭찬을 받은 김병주의 원림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다. 하나같이 원림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기록된 고전작품이 많다. 아무튼 원림은 중국에서 선점한 용어이니, 굳이 원림이라 쓸 필요는 없겠다. 전통조경이라는 말로 산업적 견지에서 사용하고, 전통공간조성 또는 전통정원, 전통원림…그냥 원림..아아 너무 산만하다. 결국 전통 공간이라고 에둘러 말하고, 굳이 표현한다면 전통조경이라고 해야 할 이다. 정원도 그냥 정원이라 할 수 없고 전통이 붙은 전통정원이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조선 후기 누정 원림을 일반적으로 전통조경의 원형이라고 다뤄지고 있다면, 그 시절에 와서야 한국의 특징적인 정원 문화가 자리잡 은 게 분명하면 누정을 중심으로 정원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누정 문화에서 가장 출현 빈도가 높은 미학적 행위는 풍류를 즐기는 것이다. 경치 좋은 곳에서 가치 있게 노는 게 풍류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풍류정원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누정 원림, 풍류 정원, 여전히 난감하다. 그러니 다시 전통조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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