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지하다, 기류

Posted by on 9월 9,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나가 있으니 일정 부분 그럴 수 있겠다 했으나, 풀리지 않는 이상한 기류, 감지되다. 소용닿지 않는 구성원으로서, 권한 행사에 저만치 떠밀린 물러터진 역할이다. 오랜만의 반가움보다 일상에 파고들어 갈 수 없는 벽을 느낀다. 가리고 쌓아 둔 게 아니었음은 분명하나, 어느 순간 그 자리는 비워 둔 게 아니라 잊혀져간 것이다. 해서 정체성과 소속감이 가우뚱댄다.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을 건너 온 듯하다. 생각과 달리 그 이격감은 진지하고 낯설고 아득하다. 거기다 대고 친하다고, 마구 친한 지꺼리를 해댄다고, 농을 섞어 낄낄대자 하였으나, 난공불락 공처럼 튀어나와 산화된다. 위대한 역할이 끝났으니 물러서야 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와 역할 제대로 이어갈 준비도 안된 채, 마당도 쓸지 않은 채, 집주인 노릇을 하겠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동물적 공간감으로서의 거부감이다. 움막에서 나갔으니 움막으로 들이지 않는다는 원초적 기질의 발현 아닐까 싶다. 새로운 질서의 복원 중인가. 누군가 빠져 나간 자리는 그 자리에서 회복되는 탄성을 지녔다. 살아있음이니까. 물렁물렁하여 누른 자리 되돌아 오는 게 생명이니까. 있던 자리 빠진 게 있으면 생물이라 빈자리도 꾸역꾸역 채워지는 게다. 물컹물컹 꾸물거리며 연체동물처럼 어느새 저만큼 채워져 있다. 자주보고 부댔겨야 연대를 이룬다. 이방인 보듯, 금방 떠돌 사람으로의 연대는 노숙자의 유대감보다 못하다. 게으름으로 귀찮음으로 공존의 시간을 대하는 데, 어찌 그 공간과 시간 속에 머물겠는가. 그리하여 대략 유목의 날들이 섞이는 것을 체험하고 만다. 내면의 혼자의 날들이여. 단단해지거라. 호두알에서, 가래알처럼 견고하고 수 천 번 부딪혀도 깨지지 말 것으로 네 손 안에서 굴러다녀야 할지니라.

-이천십구년 구월, 퇴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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