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안개 앞길

Posted by on 9월 19,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잠을 못 이루는 밤은 고생하기 싫다. 해서 끄적이며 책을 뒤적인다.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는 것과 몸 대신 책을 뒤적이는 것은 언뜻 유사하다. 조선초 성간의 시를 읽었다. 마침 글을 쓰고자 하는 모색으로 뒤척이는 내 상황이 적나라하다. 주변은 부옇게 안개처럼 앞이 잘 안 보이는데, 거기다 가는 비까지 내려 앞뒤 분간이 어렵다. 말을 세운다. 이때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 묶는 것을 세운다고 했다. 차를 세운다. 길가는 사람은 세운다. 세운다는 말이 어떻게 설립立자가 되었을까. 이 또한 산스크리트어일까? 하긴 입춘도 봄을 세우는 것이니까. 만물이 일어나고 죽순처럼 오르는 게 봄이다. 안을 세우는 것도 입안이라고 하지 않는가. 증거를 세우는 것도 입증이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 가는 비 줄기차게 내리는 가득한 막막함 속에 앞길을 묻는 것은 너도,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환한 그 무엇의 해후를 기대할 수 있는 아득함도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에서는 이랴 이랴 하며 소 몰고 오는 전옹田翁이 나온다. 밭에서 일생을 함께한 진정한 생태주의자가 전옹이다. 나그네도 오늘은 한끝 평화로웠겠다. 우주의 율려로 살아 온 농부를 만나는 것은 말 타는 사람에게 정말 안온한 순간이다. 정쟁도 당파도 너와 나를 멀리 물리치는 우주의 농부에게 배울 것은 밤이 새도록 부족할 것이다.


-이천십구년 구월 열아흐렛날, 여언재에서 退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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