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나무 아래서

Posted by on 9월 22,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 문화재 산업전을 학과 워크숍과 묶어서 1박2일로 진행된 것은 꽤 괜찮은 구도였다. 태풍으로 비 오기 전 행사이기도 하였으나, 개회식 동원을 염두에 둔 것은 하찮아 보였다. 실로 이튿날 행사 프로그램이 튼실하여 다시 전시회로 되돌리는 참석자들을 볼 수 있었다. 버스에 몸 실은 이들만 그 버스와 함께 하였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잘만도 한데, 여전히 맨숭맨숭하였다. 자꾸 황룡사지의 황량한 페허미와 만난다. 많은 이들이 거기서 폐허미를 찾는다고 일상어처럼 중얼거리고 있다. 모형 구층목탑과 현대미디어와 만나는 9층에서의 신라왕경의 모습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황룡사지 늙은 감나무’를 그렸다. 세파에 찌든 나무, 그러나 아직도 서슬 푸른 기상을 내공으로 지닌 채, 몇 알 감이 수줍게 볼을 붉히고 있었다.

내가 버스를 타고 서재를 향하는 그 시간대에 친구들도 서재를 향하고 있었다. 내게 그들은 술상도 찻상도 되는 좋은 친구들이다. 각 지역의 특산 막걸리를 사들고 안줏거리와 함께 찾아든다. 내 서재의 찻상은 순식간에 술상으로 바뀐다. 그렇게 1박을 책상 양쪽, 거실, 침실에서 5명이 나누어 자고 다음날을 맞이하였다. 누가 더 많은 말을 하고 주도하고 웃고 떠들지 않는 조화로움이 있었다. 적절하게 들어주고 나누어 말하는 오롯한 친구들이다. 오래도록 만날 수 있는 기본 생각 나눔이 장점이다.

이튿날 성흥산 사랑나무에 안내하였다. 다들 거기서 360도로 펼쳐 보이는 백제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오래된 느티나무를 사랑나무라 부른다. 1명 미리 떠난 후의 4명의 친구들이 이 느티나무 아래서 귀한 사진을 얻었다. 근사하다. 보는 쪽에서 태범, 형근, 길영, 희찬 이렇게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서 있다. 저 산자락으로 석양이 물들 때의 사진들이 명작이더구먼, 시간대가 오전이라 그 시간대에 그대로 순절하게 젖어들 수밖에 없다.

친구와 함께 근처 은산면 전통재래장 한길식품에 들렸다. ’68학번 공대 선배가 운영하는 발효식품 사업체이고, 생활 공간이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한식 뷔페에 가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어떤 사람을 보았다. 그래서 현실을 되돌릴 수 있었다. 뮤즈는 항상 상상 환경에 머물며 무한한 미를 뻗어나가면서 부풀고, 현실은 항상 ‘지폐’에서 꼬깃거리며 들락날락 자본의 웃음기를 헤프게 날린다. 선배가 옛날식 다방에 가자는 것을 낙산, 진주, 김천 등 갈 곳 먼 친구들이 있어서 정중하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떠났다. ‘또 만나자’, 이 말만 굳게 믿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천십구년 구월스무하룻날, 與言齋에서 月白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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