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지 늙은 감나무

Posted by on 11월 1,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황룡이 일어나 황량함을 메꿀까

텅 비어 심초만 유난히 가을바람에 씻긴 채

제 생김 돌아보지 않았으나

너와 나의 명료한 중심에서 나란하고

초석은 신라 왕경의 황룡사로 되살아

나 이제 폐허라고

내가 있었던 적을 기억하라고

발길에 채이는 풀 자락 속삭임으로

여기는 금당 터, 저기는 회랑이라

구층목탑의 끝 층에서 왕경의 거리를 굽어

둘러싼 신라의 산자락에 읍하였으나

없는 것 새기기 먹먹하기만 해 되돌아 나오는데,

지금은 아득하여 할 말 잃은 햇살 아래

늙은 감나무 한 그루 손 뻗는다.

고단하여 깊게 주름 잡힌 얼굴로

삼세를 달관한 표정으로

환한 감 몇 개, 수줍은 볼 붉어지고

다시 황룡이 일어 꽉 찰 거라고

그 하늘 아래 나도 잠시 있었노라고

그윽한 음성으로 가슴 저민다.

목이 메어 사방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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