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잠시 스치는 광경이 오래 남는다

Posted by on 7월 22, 2016 in 전통원림기술자::K-Gardener | 0 comments

잠시 스치는 광경이 오래 남는 경우가 꽤 있다. 아이들의 순간 표정과 언행도 늘 같지 않기에 다시 살피게 되는 이치이다. 좋은 풍경 속 아름다운 시간만 보아도 세월이 부족할 것 같다 하지만, 잠시 스치는 것에서 머물게 되는 시간 또한 귀하다. 쉽게 떠나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사유의 힘을 지녔다. 잠시 광경은 그 자신만 가지고 있는 존재의 심연을 지녔다. 그것이 풀리거나 가지고 있는 사유를 잃게 되면 휘발되어 잠시 광경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잠시 광경으로서의 통과 의례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뭔가를 시작하고 마치는 데에 찍고 접는 일은 소소하게라도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 의지에 의한 자발적 접고 펴는 일이다. 멍석을 깔고 여름 밤하늘의 별이라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장하고 의연했다. 소양천 천변을 스치면서 과연 이 순간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자문자답하였다. 벌써 세 학기가 지났다. 과만대락瓜滿帶落이라는 말이 있다. 외가 익으면 저절로 꼭지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저절로 떨어진다는데 내 과만도 꽤 멀리 왔다. 익을대로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겠지 한 것이 그나마 두 발을 굳건하게 했나보다.

모두 잠시 스치는 것들에 대한 사유를 놓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떠오르는 것과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 잠시 광경으로 떠나지 않고 나를 붙들어 매는 말 중에 ‘데면데면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저기서 그 ‘데면데면한’ 상황에 봉착하기도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이말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밀감이 없이 예사롭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무뚝뚝하다는 말과도 통하는데 어감은 둘이 매우 다르다. 아무튼 상냥하지 않은 태도다. 가끔 집밥 뷔페를 들린다. 인사를 하여도 돈을 내고 나와도 데면데면한 주인을 보면서 궁금해진다.  데면데면하게 살아가는 저 무딘 정서에 대하여 궁금해진다. 세상을 다 알아 별로 더 알고 싶지 않은 듯한 자세처럼 처신한다.

어제는 모두 떠난 텅 빈 듯한 교정에서 두리번 대다가 빛나는 광경에 목이 매였다. ‘나무수국’이 곧 벌어지려고, 터지려고 잔뜩 움추리고 있었다. 아이쿠, 눈물이 터져 나올 듯 대견했다. 작년에는 누군가 밑에서 바짝 잘라 삽목하기 위해 가져갔다고 했는데, 그게 너무 짧게 남기고 잘라가서 가지들이 도장하여 꽃이 피면 쓰러지고 해서 묶어두곤 하였는데, 올해 적당히 자르고 남겼으니 그 실한 꽃눈의 터지기 직전의 색감이라는 게 마치 새로 만든 웨딩드레스에서 느껴지는 착한 순수함이 떼로 매달려 있다. 정말 기막힌 잠시 광경이다. 천변 풍경과 집밥 뷔페의 잠시 광경을 넘어서는 찬란하여 데면데면해지는 나무수국의 찰라적 풍경이리라.

오늘 다시 한 번 더 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데면데면한 집밥 뷔페로 나서는 통과의례 앞에 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유로운 아침이다.
데면데면 풍경

데면데면 풍경

천변 풍경

천변 풍경

양묘장 관수풍경

양묘장 관수풍경

찬란한 나무수국 풍경

찬란한 나무수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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