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신작시

새로 쓰는 창작시, 출판 전의 초고 모음

매일 다례茶禮를 올리다

Posted by on 2월 18,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매일 다례를 올리다

 

어떤 날은 천지신명이고 매일 매일 두 분이어서 출타 아닌 날은 그리 더불어 나눈다 먼 길 다녀 오면 도란도란 살피고 베풀라 한 만큼의 찻잔이 그어져 있으니 내심 기쁜 마음 풍만하여 천상의 육성을 연주한다 대청마루 저쪽 끝 글방을 가로질러 내심 쫑긋거리며 달싹달싹 청취한다 참으로 벅차고 아득하여 어제만큼 오늘이 매일이 흐뭇하고 환하다 기어이 지상을 딛고 있는 당위를 채워 걸고 부호를 보낸다 의전이고 법도여서 스스로 걸친 단독자의 억류를 푼다 차 한 잔의 해갈이어 다디달다

 

 

-온형근, ‘매일 다례를 올리다’, 전문

Read More

요량하다

Posted by on 2월 12,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국운이라고 운운하던 그 때, 과연 그런게 있을까 하면서도 기대감 한 편에 켜로 쌓아 둔 적 있었지.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운이 다시  고개를 들고 다가왔지. 해서 나름대로 정성 다해 기리고 치성한다고 나섰는데, 그게 뭐라고. 실룩대며 이죽거리고 삐죽댈 때까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 그러다가 헤아려 보곤 놀라고 자빠지는거야. 아무리 해일같은 큰 복이나 운도 이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요량이 없이는 소용없는거야. 갈피 잡지 못하는 아득한 일상에서 조금도 광명을 헤아릴 수 없는 매일을 엮어가면서, 무어 복이고, 운이고, 좋은 날일까. 대접하면 뭐해, 밥상머리에 다가오지도 않는데. 주면 뭐해, 예를 흐트러트린 채 날이 채 밝지도 않았으니 허공이 암담으로 캉캉댄다.

Read More

너의 매화와 나의 매화

Posted by on 2월 11,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좋다, 좋아

한 입 가득 매화 향 물었으니

너는 관여할까.

하도 자존의 세한에 기댄 엄동설한이라

꽃피는 순간까지 우겼다.

끽해야, 겨울 목덜미에서 머물고 있는 말

우수 전에야 소문이라 확인한 채

남도에 핀 매화를 탐내고 있다, 이쪽 사람

여기는 여전히 꽃망울도 여물지 않았네

그래도 분별한다.

겁나게 금방 풀어질 것을

말하면 뭐해, 다시 터놓을 것을

해마다, 계절마다, 절기마다

날마다

너의 매화, 나의 매화

 

Read More

경칩을 기다리는 悟道

Posted by on 2월 8,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처지고 게을러지는 아침
누워서 천장 본다
본적이 있었던가

천지신명이여.
순결한 황차 올리며
더 이상 늦장 부릴 수 없는

다시 고행처럼
입산 수행처럼
툭툭 먼지 털어내고

저 들판 너머
먼산 실루엣 일별하듯
사지 관절 우두둑 꺾어 하루 엮는다.

살아있음을 울려주는 건
우수 지나 경칩 즈음 개구락지
樂至 樂至로 울면 알 수 있을까.

 

-온형근, ‘경칩을 기다리는 悟道’, 전문

Read More

말랑말랑한 화법

Posted by on 1월 30,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거칠지 않아 고요해 저음으로 응대하다 보면

벌써 저만치 혼자 나가곤드라진다.

제까짓 게 뭐라고

흔들리는 동안 짐짓 첫이레 전에 돌아올 것을

‘욕 봤소’ 한 마디면 풀린다고

살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첫 눈 내린 마당 다녀간

고라니 발굽 선명한데 아니라 우기는 것처럼

그러다가 제자리멀리뛰기였다고 떼쓴다.

재미 있는 순간까지 치부 드러내며

무릅쓰며 마음대로 떠벌렸더니

저쪽 한 구석탱이에서

공명처럼 울림의 진폭 켜켜 몰아세운다.

 

나무람에 익숙하지 않아

눈부시게 알짝지근하여 이내 야속하더니

냉큼 회한 탓하다 지청구로 쓰라리다.

공자 가라사대가 있고

시정잡배의 불경스런 말귀도 있으련만

가타부타 밝힐 것은 또 무어라.

 

홀랑 원본이 있기에 가능한 짓거리이니

근신하여 입 감쳐물고

지긋지긋  자근거리며 의젓할 일 뿐

 

화법 녹녹하다 질겅대지 말고

대수롭지 아니하면 그만인 것을

도도하여 오만방자하다고

대놓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왈가왈부 시큰둥 질척거리다

까짓것 바동거리며 손발 씻어낸다.

 

 

-온형근, 말랑말랑한 화법, 전문

Read More

설겆이

Posted by on 1월 27,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하기 싫은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새 제 궁궐을 짓는다.

쌓이는 것들의 면목에 싫은 표정이 있어

두 번 다시 곱씹기도 싫은 선언이라도 살아

포개지듯 아랑곳 없이 와 닿는 게 놀라워서가 아니다.

이죽이죽 거들먹대는 이면 계약이라도 있는걸까

한눈팔다 보면 금세 가득 쌓여 이글이글 노려본다.

잘못했다 실수였어 뒤늦게 허둥대며 질끈 대들면서

마뜩찮고 거슬리며 싫증나는 일일수록

뜨거울 때 두들기는 수행으로 다가서야겠다고 

겹치고 쌓이고 몰리는 도깨비를 지성으로 모셔야겠다고

하기 싫은 일부터 도道라 여겨 있는 정성 다하면

나머지 와닿는 기꺼움은 한결같이 빛나는 갈채일 것을

아침 차 공양으로 하루를 열듯이 그렇게

 

 

-온형근, ‘설겆이’ 전문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