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신작시

새로 쓰는 창작시, 출판 전의 초고 모음

협탁에 볼 책을 나누어 두다

Posted by on 8월 15, 2019 in 시집/신작시,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오늘은 특별히 시원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냉방기와 선풍기 등으로 환기하면서 문 닫고 살았는데, 활짝 열고 11시가 되도록 닫지 않고 있다. 강수확률도 있다. 더위가 떠난 게 아니라, 제10호 태풍 크로사가 만들어 준 바람의 항로이다. 아무튼 바람이 불어 시원한 날을 만끽한다. 어제저녁에 조립한 협탁에 손쉽게 봐야 할 책을 우선 두었다. 먼저 시선을 끌고 손길이 간다.

일어나서 고요함에 이끌렸다. 명상하고 밤사이 경직된 몸의 연결 부위와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풀었다. 국선도 준비운동이 딱 제격이다. 그리고 물 올려 찻물을 끓이고 부모님께 올릴 차 공양에 든다. 이때부터 한창 바쁘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떨 때는 꼬인다. 퇴관 치료로 중탕과 환약을 챙기는 일도 연결한다. 이어서 아침밥을 지어야 하지만, 때로는 넘기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물통에 물을 틀어 놓고 수강 신청 등을 확인하는 사이에 물이 넘쳤다. 서재 바닥의 높낮이에 따라 흥건하게 흘렀는데, 마치 멀쩡한 평지에 냇물이 열리듯 그렇게 폭을 지닌 채 흘렸다. 한참을 수건을 동원하여 훔치고 짜고 하면서, 백중의 극락왕생 기원이 현현화된 느낌이 강렬했다. 또 하나의 강을 건넜으니 훨씬 편한 세계로 입장하신 게 분명하다. 뇌하수체를 강렬하게 흔든다. 백중날 부모님이 또 하나의 강을 따라 길게 걷다가 건너는 환몽으로 현현하시다니.

이곳도 걷고 넘겨야 하는 일투성이지만, 저곳도 그러한가 보다. 가야 할 여정도 길고 오르고 내리며 건너야 할 일로 우주를 이루나 보다. 물길을 따라 길게 걷고 기어코 그 물을 말려서 건너는 일을 재현으로 보여주다니. 그렇게 좀 더 활짝 문을 열어 둔 채 눅눅해지는 기류와 태풍 영향권 덕택으로 만나는 바람의 실체를 만끽한다. 아련하여 아직은 빈속이 편하다.

-이천십구년 팔월 보름날, ‘달집’에서 月白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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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은 드셨나요

Posted by on 7월 8,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궁남지 연꽃 벌어지는 소리는 한여름 넋두리

시절의 품격이라 흔들리는 잎새 바짝 조여

이른 들판의 수런댐을 좋이 불러들이는 일

 

연화문 활짝 열어 거실로 안방으로 영접한

툇마루 창문을 냅다 열어젖힌 서늘한 공기층으로

일출은 숫기 없이 나올 듯 말 듯 발갛게 피어오른다.

 

집집이 문을 열고 도란대는 순간 열리는 슬픔

슬픔이 아름답다고 거듭하니 죄다 알짝지근한

뭉그러진 노을을 양도하느라 어슴푸레한 새벽

 

우주였고 한 조각 구름이었던 그리움은 가라앉고

그립다는 웅성거림은 순박하여 남부끄러운 줄 모른다.

쌀 씻어 아침거리 두둥둥실, 살아내야지

끼니는 굼적거리며 다가서는 별안간의 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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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울대

Posted by on 6월 20,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구증구포 녹차를 우린다.

그때 그 주전자와 잔을 꺼내 살포시 온도를 식혀서 

엄지로 차호 뚜껑을 누르던 게 검지로 바뀌었다.

식전 녹차는 속을 깎아낸다는데 목울대 울린다.

뭐라는 거야 언어로 조탁 되지 않은 울먹임

어두운 동굴같은 목구멍에서 꿀꺽꿀꺽 넘기다

말이 터졌을까

얼마나 많은 목 울림을 접고 날려서 그대의 말과 내 말이 섞어졌을까

목욕재계하여 새벽 서너 시까지 구증구포 수제 차를 만들었다면

저것은 값을 매길 수 있을까

오이지 하나를 얇게 썰어 물에 담그면

육신을 닮은 짠 내로 퍼지는 아득한 깊이에

뜨거운 밥 한 공기 퍼 담아

우두둑 넘길 때 꺼이꺼이 목청을 간질이는

이때의 온도가 녹차의 온도일까

두 소리가 만나 내는 공명은 어림잡아 몇천 년 이후

접어야 울리는 성대로 울룩불룩 꿀꺽 넘기거나 삼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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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Posted by on 6월 8,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모든 것은 지나간 시절에 있다. 김천에서 내릴 진주행 열차를 기다리며 의자에 어둔하게 앉으면서 지팡이를 올려놓았는데, 하필이면 오른 무릎 안쪽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우주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깊고 아득한 아픔이 근원을 파고들며 울렸다. 아버지는 이것을 스테크라고 불렀는데,

순간이지만 한참일 혼미함은 이승을 칸막이한 채

곧 다가올 열차에 탑승하고자 움찔대며 일어난다.

절룩대며 어깨에 가방끈을 걸치는 사이 사람의 물결

주춤대며 이끌리다 떠밀리다 머뭇대는 간격만큼

한 가닥의 힘줄이 끊어지듯 찌릿하게 다가서는 계단 위로

서로 다르게 이어지는 통로 좁은 행로로 지팡이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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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소리를 내다

Posted by on 5월 28,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내 모셔야 할 것들 많아지니

무거웠으리라

퇴관은 그 사이에 스며들었고

여태 부조리한 아픔 비슷한 방문 형태가

한꺼번에 퇴관의 요로로 급물살을 이루었다.

슬퍼할 틈도 마련되기 훨씬 이전에

차곡차곡 쌓여 포효하듯 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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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음풍

Posted by on 5월 16,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내일이면,

다짐처럼 입술 깨물었으나

숨 고르며 다가오는 건

필압처럼 사각대는 긁힘의 곡절.

한달음에 다가설 수 있는

날개 달린 백마를 부려

꿈속으로 스미는 수밖에

‘어허’ 비슷한 발성 구조로 고삐 당기는데

 

또 헛헛한 깊고 그윽한 나그네를

두리번 찾는 동안

서산 해넘이에 잠시 

아차,

목말라 혀 뺀 채, 저 눈망울 촉촉한

길고 먼 여정.

날개 꺾인 백제의 슬픈 표정

내 친구 백마와 막걸리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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