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신작시

새로 쓰는 창작시, 출판 전의 초고 모음

헤이, 카카오 꺼줘

Posted by on 1월 15,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헤이, 카카오 꺼줘 / 온형근

 

 

고통 일어도 재우는 시늉

고독 벗 삼아 유유자적한다는 암시

겨우겨우 토굴 밖에서 허위허위

토끼는 자꾸 파고 파고 중력 가까워지고

밤새도록 생각에 갇힌다.

위리안치 별거더냐 한 번은 찌개에 던지는 아까움에 대하여 크게 야단이더니 물정 흐리게 흐르는 숲을 말하더니 오늘에야 저 우울이 物外에 있었구나 저절로 서성대는 목소리로 작고 낮으면서 그윽하게 꺼져가는 불씨를 붙잡고 풍로를 돌리고 있다 바람이 샌다.

작은 그리움 한 통

거뜬히 매고 십리 길 나서야 할 일

처음 경이로웠던 숲길 근처에서

냉면이나 막국수 입에 맞는 꿈이라도 나선다면

쓸쓸함도 슬쩍 목 넘기면, 너머로 숨을 터

그러면 숲도 나무도 서로를 잠들게 할 터

헤이 카카오

꺼줘.

 

-온형근, ‘헤이, 카카오 꺼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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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그리움을 매만지다

Posted by on 12월 7,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숲, 그리움을 매만지다 / 온형근

 

 

그리움 하나 떨어뜨린 산능선 너머로

어머니의 절절하면서 고운 눈매가

백제의 미소보다 은은한 정한이

천년의 곡절을 새긴 바위처럼 등을 민다.

언제든 힘들면 돌아오라는 말은 멀리까지

점점 점으로 흐릿한 운무로 뿌옇기만 한데

여태 흔들던 손 내려놓지 않으셨을 그 자리에

새 길이 들어서고 신갈나무 숲은 떠났네.

어디까지 왔을까 돌아보니 허공 가득

금강의 강줄기 따라 갈대숲 우거져

아무 말 마라고 입술 세로 검지 채우는 숲

흔들리며 외마디 흡음하니 그리움만 어른 되네.

 

 

-온형근, ‘숲, 그리움을 매만지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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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都 담장 답사

Posted by on 12월 3,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古都 담장 답사 / 온형근

 

 

고도에서 햇살이나 주우면서 어느 왕조를 떠올리나 

한성에서 부여와 공주,

부여와 익산, 전주 엔간한데 어느 왕조를 알현하나

그대를 생각하며 어서 가보자 재촉하나

아직 충분하지 않은 인연과 여린 결심

손 뻗어 닿을 수 없는 먼 항구처럼 묵힌다.

 

그대와의 담장 하나쯤은 기억하오.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고 현상하여

마운트 입히던 시절의 순결함을

당신의 말소리 취입하지 않아 없지만

슬라이드 필름은 남아 있어 

살리고 싶은 왕조의 빈터만 긁어내고 있오.

텅 빈 민가는 주초도 없이 흔적도 없어

아무거라도 있었으면 했다오.

 

그대가 왕조의 끝자락에서 서성대며 머금었을 생각 

섬록암처럼 뚜렷한 사진으로 골자를 갈망하였건만

기골이 장대한 그대의 궁리를 보자기에 싸 둔 채

임류각이었을까 궁남지였을까, 폐사지의 담장은 또

만만하여 발돋움하면 나타나는 당신의 담장까지

발끝으로 차며 선반에 봉양한 애물단지

 

꽤 일찍 다가왔다가 여태까지 골바람 맴도는

오래도록 맵시로 치장한 허공에서 머무는 앵글

담장에 쏟아지는 낮 볕으로 온전하게 가둔다오.

그대를 건드려 터뜨린다는 건 시간의 유희

그대가 동참할 것임을 기어코 외면할 수 없어

아직은 이르다고 더디게 때를 벌고 있오.

서서히 게으름을 즐기는 사태에 와 있오.

 

 

-온형근, ‘고도 담장 답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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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에 붙는 명사

Posted by on 11월 28,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혼자에 붙는 명사 / 온형근

 

 

친구가 걱정했다.

차라리 소나 진돗개를 길러 보라고

아프니 눕는다.

보여주거나 봐야 할 근처의 상실

혼자를 줄이면 혼魂인지

혼밥, 혼술, 혼숙, 혼가, 혼언, 혼행…

갖다 붙이면 들척지근하게 달라붙는다.

혼자 중얼거리는 것은 언어를 잃을까봐?

그러면 혼자 노래하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예의일지 모르지.

저만치 물리고 눕는 동안

누워서 보이는 세상이 한 골목 휘두른다.

아프니까 혼자다.

 

 

-온형근, ‘혼자에 붙는 명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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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 엽서

Posted by on 11월 15,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상수리나무 엽서 / 온형근

 

 

백마강 부소산 절벽
꼭대기,
강 건너 멀리 청마산을 돋움하여
안개 걷힌 가을 하늘 깊다 했더니
상수리나무 지는 잎 바람 거슬러
서걱대며 끝모를 비상
부딪칠 때마다 들려오는 울음
경사진 산하로 날며 사각사각
쉼없는 방언 날리며 사부작댄다

 

혼자 떠도는 잎새에게 보내는 엽서
긴 강줄기에 그림자 남기지 않고
바람길에서 벗어나 하직 인사
낙엽, 모여 뭉친 무리에서
바스락소리는 입체를 이루고
꼬리 끊기지 않은 금강 줄기로
속절없이 흐르는 강물을 닮아
여즉
속내없이 떨어지며 날고 있다
오고 가며 기쁨이었다 절망일 소멸로


-온형근, ‘상수리나무 엽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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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과 감

Posted by on 11월 11,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촉과 감 / 온형근

 

 

감 따러 오라기에 나선 길
안개 걷히며 활력에 뻗친 감빛이 눈부신데
긴 장대 끝 원형의 철사에 매달린 나일론 봉투
툭툭 철사 걸이로 감을 당기면 쏙 빠지며 담긴다.
무른 감꼭지도 담기고 더러 땅으로 곤두박질
꼭지에 매달린 채 가지까지 덤으로 따라오는데,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옮겨갈 때쯤 뒷목 무겁고
촉도 무디어 어디가 철사이고 감꼭지 인지
감도 느려져 감 조차 앙탈 지게 버틴다.


까치 떼에게 남길 감은 나무의 우듬지를 지키고
간섭에 부러지면서 넘어가는 감나무의 가지는
그리하여 그의 천성에 다다르는 게 분명하다.
촉이 아무리 날카로워 꼭지를 자를지언정
늦은 감이 있어 감나무를 있게 하는 것을
지키지 못해 툭툭 털어내는 일 기꺼이 접수하고
그래도 촉보다는 감이 은은하여 산뜻한 것을 알아
감 껍질의 두꺼워짐에서 홍시의 속살이 익는다.


-온형근, ‘촉과 감’, 전문

[시작 노트]


처음 감을 따 보았다. 추운 곳에서 성장한 탓이다. 감 따는 촉이 따로 있더라. 그냥 느낌만으로는 곤란한 지경이다. 촉을 너무 믿을 수 없다. 그냥도 떨어지는 순간을 마주하다 보니, 어쩌면 촉은 그 예리함으로 인해 감에 상처를 입힌다. 촉이 예각이라면 감은 둔각이다. 그것도 둥글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울퉁불퉁 아슬한 둥근 옷을 입었다. 가끔 촉보다는 두리뭉실한 생각에 집히지 않는 감이 세상을 두루 아우룬다. 감나무는 잔가지를 툭툭 쳐내면서 우듬지를 다듬는다. 그래서 감도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아야 한다. 안개낀 날처럼 하나 가득 명료하지 않다. 마치 아름다움에 이르는 오지의 날 것처럼 비정하다. 촉도 감도 실체는 없다. 그러나 촉도 감도 없는 세상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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