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신작시

새로 쓰는 창작시, 출판 전의 초고 모음

경칩을 기다리는 悟道

Posted by on 2월 8,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처지고 게을러지는 아침
누워서 천장 본다
본적이 있었던가

천지신명이여.
순결한 황차 올리며
더 이상 늦장 부릴 수 없는

다시 고행처럼
입산 수행처럼
툭툭 먼지 털어내고

저 들판 너머
먼산 실루엣 일별하듯
사지 관절 우두둑 꺾어 하루 엮는다.

살아있음을 울려주는 건
우수 지나 경칩 즈음 개구락지
樂至 樂至로 울면 알 수 있을까.

 

-온형근, ‘경칩을 기다리는 悟道’,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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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화법

Posted by on 1월 30,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거칠지 않아 고요해 저음으로 응대하다 보면

벌써 저만치 혼자 나가곤드라진다.

제까짓 게 뭐라고

흔들리는 동안 짐짓 첫이레 전에 돌아올 것을

‘욕 봤소’ 한 마디면 풀린다고

살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첫 눈 내린 마당 다녀간

고라니 발굽 선명한데 아니라 우기는 것처럼

그러다가 제자리멀리뛰기였다고 떼쓴다.

재미 있는 순간까지 치부 드러내며

무릅쓰며 마음대로 떠벌렸더니

저쪽 한 구석탱이에서

공명처럼 울림의 진폭 켜켜 몰아세운다.

 

나무람에 익숙하지 않아

눈부시게 알짝지근하여 이내 야속하더니

냉큼 회한 탓하다 지청구로 쓰라리다.

공자 가라사대가 있고

시정잡배의 불경스런 말귀도 있으련만

가타부타 밝힐 것은 또 무어라.

 

홀랑 원본이 있기에 가능한 짓거리이니

근신하여 입 감쳐물고

지긋지긋  자근거리며 의젓할 일 뿐

 

화법 녹녹하다 질겅대지 말고

대수롭지 아니하면 그만인 것을

도도하여 오만방자하다고

대놓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왈가왈부 시큰둥 질척거리다

까짓것 바동거리며 손발 씻어낸다.

 

 

-온형근, 말랑말랑한 화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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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겆이

Posted by on 1월 27,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하기 싫은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새 제 궁궐을 짓는다.

쌓이는 것들의 면목에 싫은 표정이 있어

두 번 다시 곱씹기도 싫은 선언이라도 살아

포개지듯 아랑곳 없이 와 닿는 게 놀라워서가 아니다.

이죽이죽 거들먹대는 이면 계약이라도 있는걸까

한눈팔다 보면 금세 가득 쌓여 이글이글 노려본다.

잘못했다 실수였어 뒤늦게 허둥대며 질끈 대들면서

마뜩찮고 거슬리며 싫증나는 일일수록

뜨거울 때 두들기는 수행으로 다가서야겠다고 

겹치고 쌓이고 몰리는 도깨비를 지성으로 모셔야겠다고

하기 싫은 일부터 도道라 여겨 있는 정성 다하면

나머지 와닿는 기꺼움은 한결같이 빛나는 갈채일 것을

아침 차 공양으로 하루를 열듯이 그렇게

 

 

-온형근, ‘설겆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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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카카오 꺼줘

Posted by on 1월 15, 2019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헤이, 카카오 꺼줘 / 온형근

 

 

고통 일어도 재우는 시늉

고독 벗 삼아 유유자적한다는 암시

겨우겨우 토굴 밖에서 허위허위

토끼는 자꾸 파고 파고 중력 가까워지고

밤새도록 생각에 갇힌다.

위리안치 별거더냐 한 번은 찌개에 던지는 아까움에 대하여 크게 야단이더니 물정 흐리게 흐르는 숲을 말하더니 오늘에야 저 우울이 物外에 있었구나 저절로 서성대는 목소리로 작고 낮으면서 그윽하게 꺼져가는 불씨를 붙잡고 풍로를 돌리고 있다 바람이 샌다.

작은 그리움 한 통

거뜬히 매고 십리 길 나서야 할 일

처음 경이로웠던 숲길 근처에서

냉면이나 막국수 입에 맞는 꿈이라도 나선다면

쓸쓸함도 슬쩍 목 넘기면, 너머로 숨을 터

그러면 숲도 나무도 서로를 잠들게 할 터

헤이 카카오

꺼줘.

 

-온형근, ‘헤이, 카카오 꺼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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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그리움을 매만지다

Posted by on 12월 7,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숲, 그리움을 매만지다 / 온형근

 

 

그리움 하나 떨어뜨린 산능선 너머로

어머니의 절절하면서 고운 눈매가

백제의 미소보다 은은한 정한이

천년의 곡절을 새긴 바위처럼 등을 민다.

언제든 힘들면 돌아오라는 말은 멀리까지

점점 점으로 흐릿한 운무로 뿌옇기만 한데

여태 흔들던 손 내려놓지 않으셨을 그 자리에

새 길이 들어서고 신갈나무 숲은 떠났네.

어디까지 왔을까 돌아보니 허공 가득

금강의 강줄기 따라 갈대숲 우거져

아무 말 마라고 입술 세로 검지 채우는 숲

흔들리며 외마디 흡음하니 그리움만 어른 되네.

 

 

-온형근, ‘숲, 그리움을 매만지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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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都 담장 답사

Posted by on 12월 3, 2018 in 시집/신작시 | 0 comments

古都 담장 답사 / 온형근

 

 

고도에서 햇살이나 주우면서 어느 왕조를 떠올리나 

한성에서 부여와 공주,

부여와 익산, 전주 엔간한데 어느 왕조를 알현하나

그대를 생각하며 어서 가보자 재촉하나

아직 충분하지 않은 인연과 여린 결심

손 뻗어 닿을 수 없는 먼 항구처럼 묵힌다.

 

그대와의 담장 하나쯤은 기억하오.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고 현상하여

마운트 입히던 시절의 순결함을

당신의 말소리 취입하지 않아 없지만

슬라이드 필름은 남아 있어 

살리고 싶은 왕조의 빈터만 긁어내고 있오.

텅 빈 민가는 주초도 없이 흔적도 없어

아무거라도 있었으면 했다오.

 

그대가 왕조의 끝자락에서 서성대며 머금었을 생각 

섬록암처럼 뚜렷한 사진으로 골자를 갈망하였건만

기골이 장대한 그대의 궁리를 보자기에 싸 둔 채

임류각이었을까 궁남지였을까, 폐사지의 담장은 또

만만하여 발돋움하면 나타나는 당신의 담장까지

발끝으로 차며 선반에 봉양한 애물단지

 

꽤 일찍 다가왔다가 여태까지 골바람 맴도는

오래도록 맵시로 치장한 허공에서 머무는 앵글

담장에 쏟아지는 낮 볕으로 온전하게 가둔다오.

그대를 건드려 터뜨린다는 건 시간의 유희

그대가 동참할 것임을 기어코 외면할 수 없어

아직은 이르다고 더디게 때를 벌고 있오.

서서히 게으름을 즐기는 사태에 와 있오.

 

 

-온형근, ‘고도 담장 답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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