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산문

이종문, 묵 값은 내가 낼게

Posted by on 1월 15, 2019 in 시인의 숨결 | 0 comments

묵 값은 내가 낼게 / 이종문



   그해 가을 그 묵 집에서 그 귀여운 여학생이 
   묵 그릇에 툭, 떨어진 느티나무 잎새 둘을 
   냠냠냠 씹어보는 양 시늉 짓다 말을 했네
  
   저 만약 출세를 해 제 손으로 돈을 벌면 
   선생님 팔짱 끼고 경포대를 한 바퀴 돈 뒤 
   겸상해 마주보면서…… 묵을 먹을 거예요
  
   내 겨우 입을 벌려 아내에게 허락 받고 
   팔짱 낄 만반 준비 다 갖춘 지 오래인데 
   그녀는 졸업을 한 뒤 소식을 뚝, 끊고 있네
  
   도대체 그 출세란 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출세를 아직도 못했나 보네 
   공연히 가슴이 아프네, 부디 빨리 출세하게
  
   그런데, 여보게나, 경포대를 도는 일에 
   왜 하필 그 어려운 출세를 꼭 해야 하나 
   출세를 못해도 돌자, 묵 값은 내가 낼게

[출처] [이달의 시인] 이종문 – …. 나는… 가께 외 / 시인론 전해수[201811vol.38]|작성자 공시사

[온형근의 詩視時]

묵밥을 좋아한다. 가끔 그 고소한 맛으로 고독의 속성을 발견하곤 했다. 제천 중앙시장에는 올챙이묵도 팔았다. 내 기억의 이미지는 모두 40년 전의 풍경이다. 그러니 그 모습은 현장에서 사라진다. 온전히 내 상상의 제천에서만 노숙한다. 노숙도 40년이 지나니 숙성되어 출세는 무슨, 그냥 묵밥이라도 걷어차였으면 했다. 그래서 귀한 음식이 되어 알현이 어려워졌나보다. 출세 못한 게 묵밥 한 그릇 치울 수 없을 정도로 기막힌 건 아니잖아. 묵밥을 잊었겠지. 현란한 새로운 음식에 치여 차마 그리운 어머니의 묵밥, 올챙이묵은 잊혀진 게 분명하다. 아니면 세상에 치여 그리움마저 팔장 끼기 힘든 잔뜩 물먹은 무게로 지탱이 어려워진 게다. 여보게, 오늘 백제의 고도 부여에서도 묵밥을 먹을 수 있는지 살펴보게. 내 이따 거기로 가서 古都의 또다른 고독을 묵밥에게서 한 수 얻을까 하네.

(2019. 1. 15. 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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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그늘에 기대다

Posted by on 1월 13, 2019 in 시인의 숨결 | 0 comments

그늘에 기대다 / 천양희

나무에 기대어 쉴 때 나를 굽어보며

나무는 한 뼘의 그늘을 주었다

그늘에다 나무처럼

곧은 맹세를 적은 적 있다

누구나 헛되이 보낸 오늘이 없지 않겠으나

돌아보면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 것

작은 것이 아름답다던 슈마허도

세계를 흐느끼다 갔을 것이다

오늘의 내 궁리는

나무를 통해 어떻게 산을 이해할까, 이다

나에게는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어

흐리면 속썩은풀을 씹고

골짜기마다 메아리를 옮긴다

내 마음은 벼랑인데

푸른 것은 오직 저 생명의 나무뿐

서로 겹쳐 있고 서로 스며 있구나

아무래도 나는

산길을 통해 그늘을 써야겠다

수풀떠들썩팔랑나비들이 떠들썩하기 전에

나무들 속이 어두워지기 전에

 

[출처] [이달의 시인] 천양희 – 그늘에 기대다 외 / 시인론 이숭원[201901vol.40]|작성자 공시사

 

[온형근의 詩視時]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마냥 허투루 떠들썩하면서 놀고 싶다. 하루에도 초 단위로 들락대는 생각의 조각을 주워 손바닥에 펼쳐 놓고, 이게 네 것이냐, 아니면 내 것이냐. 갸우뚱대며 들었다 놓았다 가늠할 때가 있다. 나무가 만드는 그늘이야 때가 있어 원을 그리지만, 숲길의 그늘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지는지조차 숲속에 묻히고 마는 법. 찬란한 아침이었다가 지는 해,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내일을 기다리는 잠자리에 눕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다. 겹쳐 있고 스며 있는 서로의 생각들이 저들끼리 만나 웅성대는 사이에도 그늘은 생겨나서 자라고 없어지곤 한다. 어느 한순간 정적만이 남아 올곧게 곧은 나무만 하늘을 향해 있어 기댈 것이 없어질 때가 호시탐탐 곁을 두고 있다.

(2019. 1. 13.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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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볼모인 중얼거림

Posted by on 1월 12, 2019 in 시인의 숨결 | 0 comments

 

‘그리움의 동의어’ -김삼환

새벽 풍경 지켜보는 새라 해도 좋겠다
내 몸 안에 흐르는 강물이면 어떤가
산책로 비탈에 놓인 빈 의자도 좋겠다

버리기 전 세간 위에 지문으로 새겨진
눈물 흔적 비춰보는 달빛이면 또 어떤가
그날 밤 술잔 위에 뜬 별이라도 좋겠다

깨알같이 많은 어록 남겨놓은 발자국에
비포장 길 얼룩 같은 달그림자 지는 시간
빈 방을 돌고 나가는 바람이면 더 좋겠다

 

[온형근의 詩視時]
그리움을 닮아 있는 날들이 있다. 종일 내내 그리움일 수 있는 그런 날들도 있다. 나의 그리움은 연말부터 시작되어 매일 茶禮를 올리는 것으로 이르렀다. 오늘은 녹차를 우려서 정결하게 올린다. 이제는 혼자 사니까, 속으로 뇌이는 게 아니라, 겉으로 중얼대며 말한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호칭을 매일 달고 사는 것이 된 셈이다. 나라도 불러 주어야 할 ‘그리움의 동의어’이다. 첫 차를 우려 올리고, 나가고 들어오는 모든 일에 ‘어머님, 아버님’을 일상에 호출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뭔가, 그리움을 볼모로 내 중얼거림을 덮고자 하는 음모일 것이다.

(2019. 1. 12. 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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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다

Posted by on 11월 15, 2018 in 시인의 숨결 | 0 comments


은사님과 화순을 다녀왔다. 곡성에서 바로 광주로 해서 그렇게 한국 원림의 백미인 정자 원림을 둘러보았다. 화순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함께 동행한 선생님의 안내가 그렇게 안정적이었기도 하지만, 보는 눈이 있는 전공자에게 설명과 안내가 없어도 놀라움이다. 조광조 유배지로 시작하여 적벽까지 돌며 마지막 어스름에 김삿갓 시비공원에 들렸다. 늦은 시간이지만 은사님과 나는 사진으로 기념하였다.


저 먼 산에서 해가 넘어가고 있고, 나는 김삿갓이 죽기 전에 머물던 친구 집의 맞은편, 화순에서 조성한 김삿갓 시비 공원에 있다. 사진에 있는 예서 글씨는 우리를 안내해준 신정자 선생님이 쓴 작품이다. 잠 많은 아낙이라는 제목의 김삿갓 시이다.  

多睡婦 (다수부)  잠 많은 아낙

西隣愚婦睡方濃 不識蠶工況也農서린우부수방농 부식잠공황야농

機閑尺布三朝織 杵倦升糧半日春기한척포삼조직 저권승량반일춘

弟衣秋盡獨稱搗 姑襪冬過每語縫 제의추진독칭도 고말동과매어봉

蓬髮垢面形如鬼 偕老家中却恨蓬 봉발구면형여귀 해로가중각한봉

이웃 어리석은 아낙은 낮잠만 즐기네, 누에치기도 모르는데 농사짓기를 어찌 알까

베틀은 늘 한가해 베 한자에 사흘 걸리고, 절구질도 게을러 반나절에 식량 한 되 찧네

시아우 옷은 가을이 가도록 말로 다듬질하고, 시어미 버선 깁는다 바느질하며 겨울 나네

헝클어진 머리 때 낀 얼굴이 귀신같아, 같이 사는 식구들이 잘못 만났다 탄하네


그 시대를 저렇게 살아갔다는 것은 대단한 내공 이리라. 지금도 어려운 일을 어떻게 이루었을까. 어떻게 인지되게 하였으면 두 손 들게 하였을까. 와, 김삿갓은 어찌 저런 사정을 귀신같이 잡아냈을까. 시인은 또 다른 세계를 끄집어내는지라. 


모두 희다. 해서 두루 구별되지 않는다. 아무도 한 곡조 뽑으려 하지 않는다. 잠만 자야 하는데, 잠을 청해야 하는데, 두루 실망스러운 일이 허옇게 번진다. 아무 색조 하나 뽑아낼 수 없다. 그냥 희기만 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집히지 않는다. 일도 잡하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를 하는 것처럼 기척 하고 움직여야 한다. 잠 많은 아낙처럼 늘어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걱정 없는 저 내공을 어찌해야 가까이 모실 수 있을까. 도처 실망스럽다. 이 무기력함이 기대고 있는 실망의 단초를 잠으로 지워도 될까. 잠을 청하면 실망도 엷어지고 따라서 무기력함도 가라앉아 기운을 올릴 수 있을까.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서 분간되지 않는다. 

白鷗

沙白鷗白兩白白

不辨沙白與白鷗

漁歌一聲忽飛去

然後沙沙復鷗鷗 

흰 갈매기

흰모래 흰 갈매기, 둘 다 희고 희니

흰모래와 흰 갈매기, 분간이 안 가네.

어부의 노래 한 곡조에 홀연히 날아가버리니

그제야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또 갈매기 된다.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흰데 노래 한 곡조에 갈매기 나니, 그제야 모래와 갈매기가 분간된다는 김삿갓 시가 맛깔스러운 예서로 돌에 새겨져 있다. ‘탕’하면서 총소리라도 울려야 안개 가득한 이 도시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게다. 백마강의 안개가 걷혀가면, 백마교를 건너 부소산성에 오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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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바래가는 걸

Posted by on 11월 12, 2018 in 意境과 담장, 경관/평론 | 0 comments

주차장에서 선뜻 눈에 들어 온 장면이다. 뭐라 하지 않아도 저렇게 저물고 낡아 가는 것을, 벽면을 향해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 풍경이다. 묘하게 눈길이 자주 간다. 식상하지 않는다. 어떤 의도였는지 식재 설계를 되돌릴 필요 없다. 벽쪽이 좁고 양 식재 간격은 아슬하다. 딱 지금 간격에서 모양 나온다. 더 크면, 더 클 것 같지도 않은 환경이지만, 좁고 모난 풍경이 나올 게 분명하다. 지금의 저 모습 그대로만 간직하여도 여전히 아름다운 식재 풍경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축에서 자작나무만 비껴갈 수 없다. 아름답고 이쁠 때, 자꾸 봐야지.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다. 하지만 더 많은 세월이 지나도 저 공간에서 자작나무는 환경에 맞춰 최적의 선택을 할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심기는 사람이 하였지만 10년, 20년 지난 후의 모습을 자연에 맡겨 두는 것이다. 다시 손을 대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보기 싫다가 다시 보기 좋아지는 것은 묵히고 익히며 발효시키는 우리의 미의식과 닮아 있다. 자연도 스스로 제어하는 기능을 알게 모르게 발휘한다. 보기 싫었는데, 다시 보니 보기 좋은 모습이 자연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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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과 의경

Posted by on 9월 30, 2018 in 意境과 담장 | 0 comments

담장은 담 너머의 외부에서 바라보는 회화이다

담장 디자인이 뒷걸음질이다. 공주, 부여, 익산을 백제의 고도라고 부른다. 경주도 마찬가지이다., 古都라는 말이 상징하는 게 뭘까? 오래된 도시로서의 고즈넉함 같은 게 아닐까. 이곳에서 생활하는 일상의 꽤 많은 부분이 너그럽고 느리며 지혜로운 곳 같다 생각 들지 않는가. 이런 고도에서 관청이 발주한 담장 디자인에 고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도심 담장이 등장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런 사태의 전말과 결과를 추론하고 예측하는 것은쓸데 없는 일일까. 전통 담장 디자인에 대한 논문을 살펴보니, 꽤 많다. 그러나 담장 없는 사업에 대한 논문이 담장 관련 논문의 숫자만큼 엇비슷하다. 담장 허물기에 대한 논문이 담장 디자인 논문을 상회한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담장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왜 뒷걸음질을 치고 있을까. 대체 담장 허물기 사업은 무엇이길래, 좋은 담장을 만드는 전문가보다 담장 없이 사는 일에 한꺼번에 올인한 이런 것을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담장은 시대를 이끄는 오래된 전통이다

인류는 정착 생활을 통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담장을 울타리로 만든다. 境界를 만든다는 것은 구별의 행위이다. 안과 밖, 너와 나, 차안과 피안, 살면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분법적인 가치 판단이 선행된다. 그 안에 더 많은 경우의 수가 상존하는 것은 물론이다. 경계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안락을 택하는 것이 담장의 역할이다. 큰 짐승과 외부의 예기치 않은 피폭을 일차적으로 지연 또는 완화시켜주는 것이 물리적인 담장의 기본 역할이다. 집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잡아주고, 나쁜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옛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지혜이다. 방어라는 수세적인 태도에서 만들어 내는 담장이지만 미감의 여유로운 운치를 만난다. 생활의 모든 도구에서 이런 미감이 빛나는 게 문화 유산이다. 담장에도 사람의 오래된 사유가 빚어져 있다. 개성 넘치고 다양한 문양과 재료미를 한꺼번에 잃었다. 되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담장을 바라보는 사유를 새롭게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운동이 되게끔 이끌어야 한다. 지금 시도되고 있는 담장의 고착화를 관심으로 파악할 때이다. 공간 바닥의 포장 디자인보다 담장의 디자인이 낙후되었다. 대체 담장은 왜 세우는가.

부여문화재사업소의 전통미 물씬한 사고석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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