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교사::온숨

조경 교사 교육과 단순한 숨의 가치, 교사교육 현장 기록

삽목 관리

Posted by on 6월 8, 2017 in 조경교사::온숨 | 0 comments

준비없이…
여기저기 깨져가는 장방형 화분..트럭 한 차 부어놓은 마사질 흙..오래된 펄라이트와 버미큘라이트를 적당히 버무려 나무수국을 약간 늦게 삽목했다. 화분이 깊어 처음에는 과습이더니 이제 어느정도 뿌리가 생겼다. 어느 한 날 바짝 말라 고비를 넘긴 후부터는 출근하자마자 직접 관수한다. 대략 40여분 소요된다. 아이들 기능사 마치면 파종상자와 굵은 버미큘라이트로 새로운 삽목을 전담할 베드를 구축해야겠다. 녹지삽으로 채우고 궁극적으로는 번식을 전담으로 할 미스트하우스를 만들어 유지하도록 하는 게 바르다. 수목의 번식을 규모있게 해보지 않고, 어린 나무를 키워서 옮기며 목적하는 공간에 어울리도록 배식해보지 않고, 현장 설계가 뭔지를 모른다면, 내가 늘 강조하는 ‘지속 가능한 자가 발전 조경’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삽과 레이크가 지구를 디자인하는 예술인 ‘토지 예술’이라는 깨달음도 물론 생겨나지 않을테다. 다만 ‘심정적’으로 ‘프로세스’로 인지하는 지식에 불과하다. 머언 왕조 시대의 ‘마님과 머슴’의 공조가 현대 사회에서 산업이라는 미명으로 획책되고 있듯이 그저 서로 딴나라 세계로 바라본다. 생산하지 않는 소비가 미덕인 나라와 사회와 개인은 미래가 어둡다. 전부가 아닌 일부라도 생산의 연결 고리에 걸려 있어야 ‘살아 있음’의 존재가 된다. 사람이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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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위계

Posted by on 1월 20, 2017 in 조경교사::온숨 | 0 comments

 

선의 기본은 검정이다. 어디든 못가는 곳이 없다. 흔해서 존재감 약하다. 반면에 일상에서 검정을 좋아하는 소수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일수다.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넘친 부분을 가려준다. 검정선의 매력이다.

선에 위계가 있다. 이 위계만 지킬 줄 알면 깨닫는 경지에 도달한다. 머리로는 가능한 사유이지만 실제는 어렵다. 몸의 사유이기 때문이다. 몸이 알아서 하는 경지다.

명필이 붓을 가리랴.?

는 옛말에서 선의 위계를 터득하면,

선이  그어지는 곳을 가리랴?

로 바꿔야 한다.

그곳이 종이든 유리든 철판이든 두껍거나 얇기를 떠나 선이 가는 길은 거침이 없다. 필기구를 가리지 않고 그어지는 대상을 넘어서는 아득한 경지를 이른다. 참으로 되어 이룬 이가 있으니 나 또한 될 것이라고 잔뜩 유념해 둔다.

위계는 계급이다. 부모형제의 관계이고 차도와  인도의 구별이다. 눈에 확 띄는 것이며 강조하고자 애쓰는 중요성의 정도이다.

그래서 방법은 많다. 많은 방법을 다 한번씩 적용해보고 실험하여 실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겠다. 작은 나무에 한 번 긋고, 그 다음 크기에 한 번 긋는다면, 아까 그 작은 나무는 두 번의 긋기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점점 나아간다면 처음의 그 아이는 가로 세로로 그어져 있을 것이다. 가장 돋보여야 할 큰 형님은 아직 희멀건 하거나 한 번 정도 그어져 있을 것이다.

이를 반대로 하면 어떨까. 가장 큰 형님이 새카맣게 되어 있는 상황. 태양 아래 작은 것들은 그늘을 이룬다. 그러니 삼가야 할 일이다.

선의 위계는 지워지면 다시 그어야하는 유연성을 획득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수시로 제 몫을 하고 있는지 임무를 망각한 것은 아닌지를 검토한다.

선의 길을 열어 주는 라인 에디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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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벽나무 찻상 풍경

Posted by on 1월 26, 2013 in 조경교사::온숨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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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벽나무 찻상 풍경 / 온형근

기어코 황벽나무 찻상을 만들어 늘어놓는다. 내가 만든 서툴고 거친 찻상은 어머님 기일에 모인 가족들이 가지고 싶어 해 흔쾌히 나누어 주었다. 좀 더 손질하면 예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제재소에서 두 번 켜고, 켜켜 쌓아 말린 후 몇 달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내 손보다야 훨씬 나은 장인의 손을 빌린 것은 그나마 두께가 어느 정도 소용되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로 소용되는 나무는 10여 개 정도였다. 이들은 목공소 맛을 보고 돌아왔다.

목공소에서는 기계 대패를 사용할 수 있는 두께여야만 소용된다는 말이다. 여주와 수원을 오가면서 여주 이포에 있는 목재소를 들리고, 수원의 목공소를 찾고 하는데 6개월이 넘게 소요되었다. 얇아서 목공소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들은 챙겨서 가져왔다. 이제 내 손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정성을 지녀야 한다. 몇 가지 목공 기구와 기계를 갖춰야 한다. 조금씩 시간을 쪼개 만들 셈이다. 여러 개를 펼쳐 앉은뱅이 책상을 만들었으면 하는데, 그 방법 또한 아직은 막연하다. 황벽나무라는 이름만으로 호사다. 1987년 가을, 오대산에서 종자를 채취하여 파종하여 얻어낸 목재니 20년이 족히 된 나무의 나이를 가졌다.

처음에는 자생수목으로서의 가치를 높이 사서 재배하기 시작한 나무이다. 사실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등의 알에서 생긴 애벌레 먹거리로서 황벽나무의 잎은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황벽나무는 자신의 일부를 나눠주고, 애벌레는 여기에 고치를 짓는다. 한달 정도 이 과정을 거쳐 변신에 성공하면 나중에 고치에서 우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나고 낳고 쉼이 없는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순환이다. 황벽나무의 열매 또한 새들에게 귀중한 것이다. 유난히 벌레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 있는 것들이 깃들어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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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벽나무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이다. 심어 놓았던 밭을 비워주어야 하는 입장에서 제 스스로 그 밭에서 자란 황벽나무를 베어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씨앗을 채취하여 여태까지 기른 내 자신에게도 성의를 다한 셈이고, 황벽나무의 위대한 베품에도 최선을 다한 셈이다. 평생을 곁에 두고 차를 마실 때마다 마주할 이 아름다운 인연을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찻상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싫증이 난다고 하여 내칠 방안 또한 전혀 있을 수 없는 그런 찻상으로 내 앞에 놓였다.

오래도록 찻물이 들어 울긋불긋 그 안에서 또 찻물 든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을 상상해 본다. 일부러 찻물이 흐르면 찻잔 바닥으로 이리 저리 긁어 주면서 전체적으로 곱게 찻물이 황벽나무 찻상에 물들게 하여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흐르는 흔적대로 제 멋대로 찻물이 들어, 그 보기 싫을 수 있는 무늬에서 꽃도 보고 열매도 보고 살아 있을 때의 황벽나무를 찾았던 나비도 보고 새의 그림자도 볼 수 있기를 끝내 희망하고 만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황벽나무와 질긴 인연으로 얽혀 있다. 어쩌면 황벽나무가 나를 끌어 당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황벽나무는 찻상으로 만들어져 평생 지기로 함께 살아 갈 것임에는 틀림없다. 가장 멋진 친구로 거듭 태어난 내 친구 황벽나무를 한번 더 쳐다본다. 서로 다정하게 눈인사를 나눈다. 오늘 새벽에도 뜨거운 차를 우려 따뜻한 체온을 나눈 셈이다.

(다시올문학, 권두산문, 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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