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made in 3월, 2019

누구나 庭苑家이다.

Posted by on 3월 26, 2019 in 전통정원기술자::K-Gardener | 0 comments

시가 있는 정원이 한국 정원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

역사적 기록만으로 보아도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통틀어 면면히 흐르는 것이 시를 통한 풍경, 즉, 시경의 경지이다.

시를 읊는 것이 사대부의 글쓰기이고, 수양이고 출처관의 또 다른 표현일진데, 매일 풍경을 찾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계절이 녹아 있는 세밀한 묘사의 정원이 필요한 것이다.

사계절이 있고, 계절마다의 세부적인 묘사가 시공을 초월하여 이어졌다.

정태와 동태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전통 정원은 사대부의 정원과 민중의 정원이 다를 바가 없다. 사대부의 정원이 시를 통한 경관의 완성이라면, 매우 추상적이면서 동아시아 관념, 주로 중국의 유교관이 투영된 것이고, 민중은 일상의 노동과 휴식에서 세월을 느끼고 정념을 대상화하는 그들만의 사고와 실천으로 최소한의 멋내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또한 사대부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관념적으로 얻어 들은 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박하다. 감추었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다. 그냥 쓱 볼 때와 자세히 들여다 볼 때가 다르다.  정원가는 모두 보이는 게 아니라 덜 보이게 한다. 덜 보이게 하는 기법은 의미의 부여이다. 곧 의경의 발현이다. 왜 그러했는지를, 허술하고 비우고 어리숙해 보이게 했는가는 정원가인 조영자의 의미 부여에 기대야 할 몫으로 남겨 두는 것이다. 봉황의 뜻을 알아야 하고, 이황의 졸박의 형태는 어떠했을까를 상상하여야 한다. 내 관념의 졸박이 정원에 어떻게 실천으로 반영될 것인가를 한 번쯤은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런 그 시대적 인물과 사회와 사상과 출처관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옛 정원에 대한 다가섬은 한없이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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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시작해라

Posted by on 3월 23,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부여에도 매화 반짝이고 산수유 환하게 웃습니다.
오늘은 호숫가 신수유와 눈이라도 맞출까 다짐해 봅니다. 걷기에 딱 좋은 코스를 발견하였습니다.
부모님과 천지신명에게 茶禮를 올리고 나니
식전인데도 9시를 상회하고 있네요.
연필을 한 다스씩 깎아야 하니 시작이 더딥니다.
오죽하면 일하는 정면에
“바로 시작해라”라고 써 붙였을까요.

-이천십구년 삼월 스무사흗날, 여언재에서 월백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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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시공간 들락대기

Posted by on 3월 23,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부모님께 매일 茶禮를 올립니다.
존재에 대한 시공간을 허무는 것이지요.
들숨 날숨에 뭇생명이 들고 납니다.
우리도 매일 들고 나는 것입지요.
가만히 나를 쳐다 봅니다.
아차, 강의 있는 날입니다. 정신 차려야지요.

-이천십구년 삼월 스무이튿날, 여언재에서 월백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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