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made in 3월 16th, 2019

굿밤과 안녕 사이

Posted by on 3월 16,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굿밤” 이라니,

“안녕, 안녕.”

자꾸 폰을 무음으로 놓고 있다 보니 언제 들어와 있는지 정호의 카톡이, 이모티콘으로 와 있다.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 와요?” 하면서, 혹은 “아빠, 이번 4월에는 고모네 집에 가는 거지?”라고 다그치듯 묻는다. 혹여 대답이 늦으면 대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빨리 답 좀 해요.”라는 말을 더러 보았으니까. 금요일인 어제는 강의 마치고 수고한 나를 위해, 아니다 상 차리는 일이 싫어서가 더 정확할 것이다. 날씨는 또 얼마나 신산하였나. 이름도 상서로운 ‘서동탕’을 집에 오는 길목에서 외식하였다.  식당 말로는 소에서 나오는 다양한 부재료로 끓인다고 했다. 설렁탕 재료도, 갈비탕 재료도, 면발도 들어 있다. 잡탕인 셈이다. 가격도 그 식당에서 높다. 8천, 1만, 1만2천 중 하나이다. 이제는 혼자 식당 찾아 가는 일도 서슴치 않는 것을 보니, 제법이다. 일을 마치고 한가해지면 뭘 하겠다는 말을 삼간다. 그냥 바쁘거나 한가하거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직에 있을 때도 그런 생각으로 근무하였다. 있는 자리에서 늘 같은 마음으로 행하는 게 ‘큰 사람’, ‘녹봉 받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라고 여겼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은 공인으로 살고, 공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게 확장되니 현직에서 물러나 있어도 생활 관행은 같아진다. 역으로 말하면 아무리 바빠도 주막에 나앉을 일은 받고, 정말 심심하고 지겨울 때는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어 내면의 깊이에 다가선다. 늦게라도 폰을 보고 얼른 답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김천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 왜 이리 바로 받아?”, “전화기 들고 있다가…”, “뭐해?” “공부했어.” 아, 참으로 난감하고 얼굴 간지럽더라. 이런 대화 가능한 친구 몇 될까 하면서 그냥 그렇게 낯간지럽고 말았다. 언제나 어떤 이야기든 송수화기 너머에서 정감을 주고 받는 동안 다시 혼자가 된다.

“네네. 좋아요” 

얼마전 막내가 사준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이모티콘으로 답을 보냈다. 이모티콘 한 개피 뽑아 서로의 부재를 얼마나 상쇄시킬 수 있을까 싶지만 이 시대에 이모티콘 몇 개피 뽑아 쓸 수 있는 것도 분명 소통인 것이니 어쩌랴. “있잖아, 아빠가 이거 보냈어.”하고 누나에게 보여주고 있을 환한 표정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천십구년 삼월 열엿새날, 與言齋에서 月白 묵상.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