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made in 4월 21st, 2019

진환해선, 티끌세상에도 바닷속 신선이 있으니

Posted by on 4월 21, 2019 in 與言齋::묵상 | 0 comments

익선달,

오늘은 일요일의 막연함을 들추다가 황희 선생의 싯구를 하나 얻었네. 여말선초의 그 투명한 선비로 각인된 정치인이지. 진흙탕 속에서 맑은 삶을 살려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치 지금의 이낙연 총리와 황희를 비교하곤 하네만, 이또한 내 주관적인 상상력의 만족일 뿐, 그 외의 어떤 논리적 비약은 생략하기로 하세.

익선달이 유럽으로 떠날 때, 이미 한 장의 이미지도 보내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사진 한 장으로 근황을 알리는 얇은 수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이미 예상하였네. 전혀 무소식에 애타는 무리수는 두지 않고 있음이 이쪽의 현명함임을 알기 바라네.

진환이라는 말이 사람 많이 모려 사는 티끌 세상을 말함인데, 온갖 인간의 애환이 서려 있는 도심을 떠나 바닷속 청정함을 간직한 신선이 있다는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티끌 세상을 탓하기 전에 청정한 곳을 찾아다니는 행보가 그만큼 필요한 것일세.

기억나겠지만 익선달, 경포를 지나 강릉 허난설헌 생가에 갔을 때, 나는 허균과 난설헌의 뜨거운 가슴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순두부에 입천장을 데이는 등 불편하였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속 신선 생각은 하지 못하였네.

이제 익선달이 바닷가 나라들을 순방하고 있을 그 도시에서 혹여 선달의 형님 뻘 되는 신선을 생각하고 있는지, 혹여 부여의 누루에 사는 이 보잘 것 없는 형을 한번이라도 떠올리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접고 아픈 곳 없이 잘 다니라고 이역에서 소식 전하네. 물 한 잔에도 격이 있고 급이 있으니 잘 씹어 마시게.

-이천십구년 사월 스무하룻날, 月白이 ‘달집’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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